홀로 떠나는 여행길
이따금 나는 지도를 펴지 않는다. 낯선 도시의 이름들, 바다와 강, 산맥을 잇는 경계선 따위는 외려 나를 미로 속에 가두기 때문이다. 길은 언제나 내 안에서 시작되고, 끝없이 펼쳐진다. 그러니 여행은 단지 발걸음이 아니라, 감각과 기억, 언어를 이끌고 떠나는 내면의 항해다. 작가에게 여행은 피로한 일상을 벗어나려는 도피가 아니라, 무뎌진 영혼의 귀환이다.누군가는 작가를 꿈꾸는 이유를 묻는다. 나는 다만, 다시 보고, 다시 느끼고, 다시 쓰기 위해 걷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황톳길을 맨발로 걸을 때, 나는 도시의 콘크리트 아래 묻혀 있던 나를 다시 만난다. 허물어진 성벽 위에 앉아 바람에 실려 온 이름 모를 풀잎 냄새를 맡을 때, 내 안의 문장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 이런 풍경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날고 싶은 새
도시의 아침은 언제나 기계음으로 깨어난다. 알람 소리, 자동차 경적,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소리. 나는 그 소리 사이로, 희미하게 들려오는 날갯짓을 감지했다. 고개를 들자, 마치 보이지 않는 선에 따라 그어진 듯, 새 떼가 잿빛 하늘을 비스듬히 가르고 있었다. 깃털의 곡선이 일으키는 바람, 그 짧은 진동마저 투명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하지만 그중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하강하고 있었다. 어딘가 아파 보였다. 날개 끝이 바람을 정확히 가르지 못하고 휘청였다. 그것은 자유의 추락처럼 보였고, 아름다움의 쇠락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의식중에 주먹을 쥐었다.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그러나 붙잡을 수 없는 순간. 그 새는 이내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그날 저녁, 나는 골목 어귀에서 그것을 다시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