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결혼하는 딸에게

딸아, 네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를 향해 걸어오던 그 순간, 나는 웃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축하한다는 말로 다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과
삶을 시작한다는 기쁨 뒤에,
너를 보내는 아빠의 쓸쓸함이 함께 따라왔단다.
사람들은 흔히 ‘딸을 시집보낸다’라고 하지 않고
‘딸을 여읜다’라고 하지.
이제야 그 말의 무게를 알겠다.
내 어깨에 내려앉은 공허는
너의 방처럼 조용하고 깊었다.

결혼식이 끝난 다음 날,
네가 없는 집 안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더구나.
네 웃음소리가 배어 있던 거실,
새벽마다 불을 밝혔던 너의 방,
가끔 네가 기대어 앉아
책을 읽던 창가 자리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너만 없었다.
마치 꽃이 진 자리에 향기만 남아 있는 것처럼.

나는 멍하니 너의 방에 앉아
네가 남긴 것들을 들여다보았다.
책상 위엔 오래된 메모지 한 장,
화병엔 빛이 바랜 조화 한 송이,
그리고 벽에 걸린 네 웃는 얼굴.
그걸 보며 나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너는 이제 다른 집의 사람이 되었지만,
내 마음엔 영원히 내 딸로 남겠지.
너의 이름을 부를 일이 줄어들겠지만,
그 이름을 속으로
수없이 되뇌며 살게 될 것이다.

그 방은 이제 바람이 드나드는 자리다.
너는 떠났고, 삶은 이어지지만,
사랑은 한 자리를 오래도록 비워두는 법이더라.
그 빈자리는
아빠의 마음에 매일 꽃처럼 피고 진다.
기쁘면서도 아프다. 아프면서도 따뜻하다.

이제 너는 누군가의 아내가 되었구나.
사랑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의 뜻을
몸으로 알아갈 날들이 시작되었겠지.
부디 기억하렴.
부부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존재들이란다.
습관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마음의 속도마저 다르지. 그래서 갈등도 있고,
때로는 말이 칼처럼 날카롭기도 하지.
하지만 대화는
그 모든 갈등을 풀어내는 실타래야.
참는 것보다, 따뜻하게 꺼내는 용기를
먼저 배워야 한단다.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내렴.
의견이 다를 땐 설득하려 들기보다
먼저 이해하려 해보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그 마음의 뿌리를 들여다보는 눈을 길러야 해.
다툼은 자주 있을 수 있어.
하지만 다툼보다 더 중요한 건
‘다시 웃을 수 있는 법’을 아는 것이란다.
잠시 돌아서더라도 결국은 서로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연습. 그것이 부부의 힘이란다.

딸아, 새로운 집에서의 삶은
너에게 익숙하지 않은 풍경일 테지.
낯선 공간, 낯선 가족, 그리고 새로운 역할.
모든 것이 조금은 낯설고 어색할 거야.
하지만 너무 두려워하지 마라.
시부모님과의 관계는
너의 인품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해.
그분들은 남편의 뿌리이고,
너의 또 다른 가족이란다. 어려워하지 마라.
정성껏 대하되, 억지로 너를 다치게 하며
맞추려고 애쓰지는 말고.
진심은 언젠가 전해지게 돼 있어.
진심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꽃을 피운단다.
네가 존중을 보이면, 그 존중은 결국
너를 품어줄 큰 그늘이 되어줄 것이다.
사돈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도 있지만,
진심은 가까울수록 좋단다.
네가 먼저 손 내밀어라.
따뜻한 손은 누구든 잡고 싶어진단다.

너는 이제, 가정을 꾸려가게 된다.
가정이란 건 매일 아침 따뜻한 말 한마디,
식탁 위 작은 배려 하나,
밤마다 나누는 소소한 이야기들로
조금씩 단단해지는 집이다.
'피스 위버'(Peace Weaver)
오래전 영국에서는 아내를 그렇게 불렀지.
평화를 짜는 사람.
너도 그런 아내가 되기를 바란다.
따뜻하되 단단하고, 부드럽되 명확한,
삶의 결을 품은 아내 말이야.
감정을 가두지 말고, 생각을 방치하지 말고,
마음을 늘 말로 실어 나르는 그런 사람이 되렴.

네가 아내가 되었다고 해서
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너는 여전히 너다.
남편과 함께 살아가며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이다.
모든 부부는 다른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는 동행이란다.
완벽한 조화를 기대하지 마라.
때로는 말이 어긋나고,
때로는 마음이 멀게 느껴질 것이다.
그럴 땐 침묵보다는 대화로,
오해보다는 이해로 다가가거라.
한마디 말이 다툼의 불씨가 될 수도,
다시 손을 잡는 다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너는 자존심이 강하고, 생각이 깊은 아이다.
그런 너라면 말없이 참기보다,
상처를 나누고 치유할 줄 아는
지혜로운 아내가 되리라 믿는다.
너무 자주 싸우지는 마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너의 말 한마디에
남편의 하루가 달라질 수 있다는걸,
그 섬세한 진실을 잊지 마라.

사랑은 감정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노력이라는 따뜻한 연료가 필요하다.
너희의 결혼 생활은
늘 새로운 길을 찾는 여정이 될 것이다.
서로의 매력을 유지하되, 지성을 잃지 말고,
서로의 시간을 소중히 여겨라.
때론 바쁜 하루 속에서 찻잔 하나,
책 한 권이 둘 사이의 거리를 메울
다리가 되기도 한다.
아내라는 이름은 단순한 역할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섬세한 직조자이자,
가정이라는 작은 우주를 품는 사람이다.

딸아,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지만
결혼은 ‘같이 살아가는 선택’을
날마다 반복하는 일이란다.
그러니 잊지 마라.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그 사람의 하루를
책임지는 일이기도 하다는걸.
그 하루들이 모여 너희의 생이 될 테니.

이따금 힘들겠지.
울고 싶을 때도 있겠고,
되돌아가고 싶은 날도 있겠지.
그럴 땐 전화를 해라.
네 방은 여전히 이 집에 있다.
빈 자리지만, 너의 향기는 떠나지 않았고,
그리움은 더욱 선명해졌다.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마음의 항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딸아,
너의 새로운 시작을 진심으로 축복한다.
네가 걷는 길이 꽃길만은 아닐지라도,
네가 가꾸는 삶이 언제나 향기롭기를.
그리고 언젠가 네 딸이 너의 손을 잡고
새로운 길로 나아갈 때,
오늘 너의 아빠가 느낀 이 감정을 기억하겠지.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모양이란다.

그리고, 아빠는 언제나 여기 있을게.
언제든 오고 싶으면 오렴.
너의 방은, 아직도 네 이름을 부르고 있단다.
창문을 열면 바람이 들어오고,
책상 위엔 여전히 꽃 한 송이가 놓여 있단다.
그건, 아빠의 사랑이란다.
시들지 않는 꽃.
영원히 네 편인,
사랑.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날고 싶은 새  (0) 2025.04.10
봄날의 이별  (0) 2025.04.09
꽃을 심는 시인  (0) 2025.04.07
인연  (0) 2025.04.06
기대어 짓는 집  (0) 2025.04.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