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215)
감각과 자아 인간은 오감을 통해 세상을 인식한다. 빛과 소리, 향기와 맛, 촉감의 무수한 파동들이 마치 진실의 전부인 양 우리 안으로 밀려온다. 그러나 우리는 그 파동 위에 감정을 덧입히고, 그 감정을 곧 자기 자신이라 믿는 습관을 지녔다. 기쁨에 웃을 때, 고통에 눈물지을 때, 우리는 그것이 나의 본질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감각의 부산물일 뿐, 우리의 참된 자아는 감각의 파도 너머에서 조용히 흐르고 있다.감각은 유한하다. 불꽃처럼 일어나 타오르다가 결국 꺼져버리는 한순간의 환영이다.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감정들.황홀한 쾌락과 고통의 절망 역시 결국 이 불꽃에 불과하다. 진리의 눈을 뜬 사람은 그 불꽃이 잠시 어두운 방을 밝히는 것일 뿐, 그 빛을 영원으로 오해하지 않는다. 감각에서 독립한다는 것은,..
시간의 풍경 시간은 흐른다. 그러나 나는 안다. 시간이 언제나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란 걸. 어떤 시간은 흐르지 않고, 내 몸 어딘가에 무겁게 내려앉아 숨을 고른다. 그것은 마치 긴 호흡을 멈춘 호수처럼 조용하고, 가끔은 바람 한 점 없는 대지처럼 적막하다. 나이를 헤아리는 숫자보다도 먼저, 내 무릎의 관절이 시간의 존재를 말해주었다. 가늘게 패인 눈가의 주름 하나하나가 흘러간 계절을 껴안고 있었고, 가끔 문득 찾아오는 잊힌 통증은 한때의 여름날, 혹은 오래된 겨울의 냉기를 속삭이고 있었다.기억 속에는 여전히 바람이 산다. 그 바람은 내가 어릴 적 뛰놀던 들녘을 지난다. 할아버지의 지팡이 소리, 엄마의 된장 냄새, 아버지의 묵직한 발소리까지 모두 그 바람 속에 얹혀 있었다. 나는 그 추억의 바람을 맡으며 깨닫는다...
파도 바다 앞에 선다.파도 소리가 바람을 등에 업고 수평선을 몰아내며 내 몸을 세차게 흔든다. 파도는 거대한 괴수처럼 달려들다 부서지고, 다시 뒤엉켜 새로운 형체로 솟구쳐 오르며하나의 장중한 교향곡을 만들어낸다.해안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물기둥이 잠시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나는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고립된 듯이 서 있다. 마치 거대한 무대 위에 올려진 미약한 인간 하나가, 신들의 분노 앞에서 발버둥도 치지 못한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듯하다.바다의 울음인지, 내 안의 격정이 반향을 일으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동해의 해안에서 맞닥뜨린 폭풍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었다. 폭풍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깊은 심연을 건드려 흔드는 손길이다. 뒤엉키고 흩날리는 물결 ..
그리움 그리움은 불시에 찾아와 몸을 휘감는다. 그것은 마치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바람이 스쳐 가는 것처럼, 미세한 통증으로 시작해 전신을 울린다. 부재한 그 사람의 이름을 속으로 부를 때마다, 기다림은 무릎을 굽히고, 원망은 가슴을 옥죄며, 슬픔은 목울대를 타고 오르고, 체념은 등 뒤에서 조용히 그림자를 드리운다. 상반된 감정들이 뒤엉켜 한꺼번에 몰려오면, 삶은 한순간에 고열에 시달리는 병자의 몸처럼 덜컥거린다.시간은 이때 비정상적으로 움직인다. 그리움의 순간에는 과거가 현재를 침투하고, 현재는 미래를 끌어내린다.그리움은 시간을 왜곡한다.하루는 한순간으로 무너지고, 한순간은 계절처럼 길어진다.짧은 순간이 영겁처럼 길게 늘어나기도 하고, 몇 년의 세월이 찰나처럼 압축되기도 한다.손끝에 아직 남아 있는 체온..
늙어가는 일 밤마다 벽시계 초침 소리가 또렷하다.한때는 공기 속에 묻혀 아무렇지 않던 소리인데, 이제는 가슴 깊이 파고든다. 초침이 멈추는 듯 이어지는 그 공백마다 낯선 고요가 깃들고, 그 고요 속에서 자신의 늙음을 실감한다. 내 몸 또한 시계처럼 제멋대로 멈추었다가 흐르기를 반복한다. 뛰어야 할 때는 멈추고, 멈춰야 할 때는 뜻밖에 흘러넘친다.욕실 하수관도 어느 날 갑자기 심술을 부린다. 잠가도 물이 바로 내려가지 않고 물이 바닥에 고인다. 거침없이 흐르던 관이 오래되다 보니 노폐물로 막힌 것 같다. 몸도 그와 다르지 않다.젊음이 질서였다면, 늙음은 통제할 수 없는 틈새의 시간이다.가끔 관절이 삐걱 소리를 낸다. 오래된 경첩처럼 힘겹게 움직이며, 내 몸이 더는 나를 거뜬히 이끌어 주지 못함을 드러낸다. 젊을 땐 몸..
수필, 또 하나의 영화 수필을 쓴다는 것은 한 편의 영화를 촬영하는 일과 같다. 그리고 수필가는 무대 위에서 자유자재로 변신하는 노련한 배우여야 한다. 한 장면을 위해 수십 번의 리허설을 반복하고, 단 한 줄의 대사를 위해 오랜 시간을 몰입하는 배우처럼, 수필가 역시 글을 쓰기 전 고요히 사유하며, 관찰하고, 삶의 무대를 정직하게 응시해야 한다. 깊이 있는 내면 연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땀과 훈련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배우가 온몸으로 배역에 스며들 듯, 수필가는 온 영혼으로 삶을 연기해야 한다.카메라가 사람과 풍경을 여러 각도에서 담아내듯, 수필가의 눈도 그와 같아야 한다. 인간의 웃음 뒤에 숨어 있는 고독, 꽃잎이 져도 다시 돋아나는 잎맥의 끈질김, 바람이 스쳐간 하늘의 미묘한 빛깔까지그것을 세밀히 포착하는 눈...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 예전에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오해하지 않기를, 잘못된 눈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 자신을 조각내어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설명이 아닌, 드러냄.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표정과 숨결을 내어놓을 뿐이다. 상대가 천천히 나를 발견하게 하고 싶다.누군가는 내 속도를 따라오다 멈추고, 또 누군가는 나를 관찰하다 흥미를 잃을 것이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기로 했다.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파편을 맞추어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일과 같다.어떤 날에는 맑은 유리창 같고, 또 어떤 날에는 안개 낀 거울 같다. 그래서 타인을 바라보는 일은 늘 미완성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완전한 선과 색을 바라는 순간, 실망은 그림자처..
장밋빛 인생 인생의 가장 눈부셨던 순간을 떠올려 본다.햇살이 막 피어오르던 아침처럼, 그때의 웃음은 순도 높은 다이아몬드 같았다. 빛의 각도마다 다른 색으로 반짝이며, 잠시나마 세상 전체를 내 편으로 만들던 순간. 우리는 그것을 ‘행복’이라 불렀다. 그러나 다이아몬드도 결국 시간의 바닷속에서 빛을 잃을 수 있듯, 장미의 붉음도 어느 날 갑자기 시들어 버리곤 한다.삶은 장미와 닮았다.꽃잎은 화려하지만, 뿌리에는 흙의 어둠이 스며 있고, 줄기에는 날카로운 가시가 숨어 있다. 그래서 인생의 가치는 꽃의 화려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가시와 흙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어떤 이는 시듦을 두려워하며 꽃을 피우지 못하고, 또 어떤 이는 시듦을 알기에 더 치열하게 아름다움을 키워낸다.나는 결과보다는 여정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