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앞에 선다.
파도 소리가 바람을 등에 업고 수평선을 몰아내며
내 몸을 세차게 흔든다.
파도는 거대한 괴수처럼 달려들다 부서지고,
다시 뒤엉켜 새로운 형체로 솟구쳐 오르며
하나의 장중한 교향곡을 만들어낸다.
해안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지는 물기둥이
잠시 하얀 이빨을 드러냈다가 사라진다.
나는 그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고립된 듯이 서 있다.
마치 거대한 무대 위에 올려진 미약한 인간 하나가,
신들의 분노 앞에서 발버둥도 치지 못한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이는 듯하다.
바다의 울음인지,
내 안의 격정이 반향을 일으키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다.
동해의 해안에서 맞닥뜨린 폭풍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화폭이었다.
폭풍은 단순한 날씨가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깊은 심연을
건드려 흔드는 손길이다.
뒤엉키고 흩날리는 물결 속에서
오래된 기억과 억눌린 감정들이 함께 들끓는다.
동해의 파도는 나를 끌어내려 가두려는 듯했고,
동시에 나를 다시 세상 밖으로 밀어내려는 듯했다.
그 상충하는 힘 앞에서 나는 오히려 숨이 트였다. 압도적인 힘 앞에서야
비로소 인간의 작음이 선명해지고,
그 작음에서 이상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다.
이 순간, 문득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다.
가쓰시카 호쿠사이의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화면을 가득 메운 푸른 파도는
용틀임하는 괴물처럼 배들을 덮치려 하고,
그 위로 먼 산의 후지산은 너무도 작게,
그러나 묵묵히 서 있다.
호쿠사이는 파도의 형체를 고정하려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간결하고 명확한 선으로,
한순간에 솟구쳤다가 사라지는
물결의 생명을 붙잡아냈다.
나는 그가 왜 파도를 그렇게 그렸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파도는 정형을 거부한다.
삶처럼, 슬픔처럼, 욕망처럼 늘 변하고 흔들리며,
순간마다 다른 얼굴을 내민다.
호쿠사이가 그린 것은 물의 모양이 아니라,
삶의 격랑과 그것을 응시하는 인간의 두려움,
그리고 경외심이었다.
예술가는 그것을 손끝으로 받아 적은 것이리라.
파도는 고통을 닮았다.
부서지고 흩어졌다가
다시 일어서는 그 집요한 반복 속에서,
나는 살아온 시간의 굴곡을 본다.
감당하기 힘들었던 순간들,
부서지는 듯한 좌절들,
그러나 끝내 다시 일어설 수밖에 없었던 시간.
그 모든 것이 파도의 곡선 속에 숨겨져 있다.
호쿠사이가 그린 흰 거품은,
어쩌면 예술가 자신이 맞닥뜨린 고독의 흔적이자,
세상에 내던진 절규일 것이다.
마치 호쿠사이가 그림을 통해 공포를 넘어
경이로움으로 나아갔듯이,
나 또한 예술의 언어로 내 삶을 새기고 싶어진다.
예술은 어쩌면 이런 순간에서 태어나는지도 모른다. 고통과 두려움, 경이와 희망이 한데 얽힌 경계에서,
인간은 말을 잃고 대신 선과 색, 소리와 몸짓으로
그 감정을 붙잡는다.
호쿠사이의 파도가 그러했고,
지금 내 귀를 가득 메우는 바다가 그러하다.
예술은 세상의 압도적인 힘과 교감하려는 몸부림이며, 동시에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서 피어나는
작은 불꽃이기도 하다.
나는 그 둘 사이에서 내 안의 욕망과 꿈을 발견한다.
삶의 고독을 견디게 하는 뜨거움이
바로 거기 있었음을.
폭풍이 잦아든 저녁,
바다는 잠시 누그러진 듯 고요하다.
그러나 그 잔물결 속에서도
여전히 호쿠사이의 파도가 출렁인다.
변화를 멈추지 않는 물결처럼,
내 안의 불안과 열망도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그것을 두려움으로만 남기지 않으려 한다.
언젠가 그것이 내 언어로, 내 그림으로,
내 삶의 고백으로 흘러나오길 바라며,
오늘의 파도 소리를 가슴 깊이 새겨 넣는다.
삶도 이와 같으리라.
고요 뒤에 고통의 흔적이 남고,
그 흔적이야말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증거가 된다.
삶은 결국 파도타기였다.
그리고 예술은 그 위태로운 파도 위에서
잠시 균형을 잡게 해주는 작은 노(櫓)였다.
나는 지금,
밤바다의 끝에서 비로소 그 노를 움켜쥔다.
파도가 내게 속삭인다.
"삶은 부서지면서도 흩어지지 않는다."
나는 그 말을 마음에 새긴다.
그리고 다시, 나만의 파도를 그려보기 위해,
묵묵히 바다를 응시한다.
사진 : 묵호 대진, 어달, 삼척 장호항,
옥계해변 등에서 촬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