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나를 설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오해하지 않기를,
잘못된 눈으로 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커서,
자신을 조각내어 보여주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설명이 아닌, 드러냄.
억지로 꾸민 것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표정과 숨결을 내어놓을 뿐이다.
상대가 천천히 나를 발견하게 하고 싶다.
누군가는 내 속도를 따라오다 멈추고,
또 누군가는 나를 관찰하다 흥미를 잃을 것이다.
그것을 억지로 바꾸려 하지 않기로 했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은
하나의 초상화를 그리는 일이 아니라,
수많은 파편을 맞추어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일과 같다.
어떤 날에는 맑은 유리창 같고,
또 어떤 날에는 안개 낀 거울 같다.
그래서 타인을 바라보는 일은
늘 미완성의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같다.
완전한 선과 색을 바라는 순간,
실망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러나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결일지 모른다.
누구도 한 가지 색으로 고정될 수 없다.
마치 햇살이 유리잔을 통과하며 다른 빛을 쏟아내듯,
관계 속의 나와 타인은 언제나 다채롭게 굴절된다.
나는 더 이상 모든 이에게 다 내보이려 하지 않는다.
굳이 모든 사람에게
집 전체의 열쇠를 내어줄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거실에만 머물다 떠나고,
누군가는 마당에서 잠시 바람을 쐬다 사라진다.
아주 드물게,
몇몇은 내 좁은 서재까지 들어와 오래 앉아 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애써 나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관계는 애써 쥐려 한다고 반드시 머무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는 노력도 없이 나와 스며들 듯 친해지고,
또 다른 이는 질문과 호기심으로 끈질기게 다가온다.
그 모두가 자연스럽다.
억지로 매듭지으려 들면 오히려 실이 풀려버린다.
나는 이제 관계를 ‘방치’하는 법을 안다.
그러나 그것은 포기가 아니라, 운명에 대한 믿음이다.
떠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단지 지금의 인연이 끝났기 때문일 뿐.
만날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 우연을 가장한 운명으로 다시 마주치리라는 희미한 확신이 있다.
그 믿음은 때로 바람처럼 연약하지만,
동시에 별빛처럼 꺼지지 않는 희망이기도 하다.
사람과의 관계는 강물 위의 나룻배와도 같다.
어떤 이는 건너편에 다다르기 전에 내린다.
또 어떤 이는 파도에 밀려 떠나간다.
하지만 언젠가 다시 마주칠 사람이라면,
강의 또 다른 굽이에서
우리는 뜻밖에 시선을 맞추게 될 것이다.
그때는 설명도, 해명도,
억지웃음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서로의 모습이 스스로 말하고,
침묵이 대화를 대신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설명 대신 존재를 내어놓는다.
빛과 그림자를 함께 가진, 불완전한 나의 얼굴을.
그리고 누군가는 그 파편들을 천천히 주워,
자신만의 언어로 나를 완성해 갈 것이다.
그 순간에야 비로소
우리는 서로를 ‘안다’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는 모두 서로의 책장에 미완성의 장으로 남아,
언젠가 다시 읽히기를 기다리는 문장일 뿐이다.
음악듣기 / 신지호 - 너의 색으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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