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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늦은 오후의 고백

오래전, 어머니의 조용한 전화 목소리.
“너 요즘은 전화도 뜸하더라.”
툭 던지신 그 이야기가,
마치 오래된 돌담에 난 미세한 금처럼
마음을 스르륵 긁고 지나갔다.
나는 익숙한 웃음으로 둘러댔다.
바빠서, 정신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그러나 내 마음의 깊은 곳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짧은 말은 다만,
“아들이 보고 싶다”라는
가장 길고 애틋한 고백이었다는 것을.

사람은 늘
사랑도, 미안함도, 고마움도
너무 늦게 해독한다.
삶이란, 무엇을 잃고 나서야
조금씩 투명해지는 창 같아서,
그제야 우리는 마음을 들여다본다.

아버지가 병상에 누우셨을 때,
나는 그분의 이마에 손 한번 얹지 못했다.
엄했던 분, 가까이 가면
날카롭게 다칠 것 같던 거리감.
내가 어색해서, 서툴러서.
결국, 다정한 말 한마디 못 건넨 채
스르륵 커튼을 닫고 말았다.

다정함은 아마도
가장 많은 연습이 필요한 감정일 것이다.
목울대까지 차올랐다가 끝내 삼켜진 말들,
그 밤, 창밖엔 별이 지고 있었다.
나는 오래도록
그 별들을 바라보다가 울고 말았다.
그 별빛은 부모님의 눈동자 같았고,
나는 그 눈동자 속에서
무수한 ‘미안함’과 ‘사랑’의 잔광을 보았다.

삶은 늘 달리는 기차 같아,
어디엔가 도착해야만 마음이 놓일 것처럼
나는 늘 ‘나중에’를 입에 달고 살았다.
“나중에 전화하지, 나중에 찾아뵙지,
나중에 말해야지.”
하지만 어느새 그 ‘나중’이라는 말은
‘영영’이라는 단어로 바뀌어 있었다.
지금은 말하고 싶어도, 닿을 수 없다.
그러고 싶어도 너무 멀리 계시기에.

관계란 실금이 아니라, 금(金)이다.
귀하고, 단단하며, 제빛을 가진 것.
금이 가면 다시 붙일 수도 있겠지만,
그 틈마저 무너져 내리면,
남는 건 날카로운 파편뿐이다.
우리는 그 앞에서
후회란 조각들을 주워 담아야 한다.

상처는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이에게 더 깊이 남는다.
말이 없어서, 표현이 서툴러서,
혹은 너무 익숙해서.
나는 냉정한 말로
어머니의 눈에 눈물을 심었고,
침묵으로 아버지의 등을 밀어냈으며,
어린 날 친구들에게 등을 돌렸다.
그때는 내가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이제는 안다.
옳고 그름보다 중요한 건
온기와 따뜻함이라는 것을.

삶의 중심에서 한 걸음 물러서 바라보니,
내가 남긴 말들과 침묵들이
누군가에게는 지워지지 않는
그림자가 되어 있었다.
기억은 감정의 농도로 남는다.
서운했던 말 한마디, 외면하던 눈빛,
무심히 지나친 날의 햇살.
그 모든 것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아직도 따뜻하거나 싸늘하게 살아 있었다.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라, 용기의 문제다.
화해는 시간이 아니라, 결심의 문제다.
내일이라는 막연한 유예는
그리 오래 머물러주지 않는다.
시간이란, 지나면 잊히는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지는 것이다.
화해는 세월 속에 묻는 일이 아니라
기억 속에서 꺼내어 다시 어루만지는 일이다.

지금은 인생의 늦은 오후.
나는 이제 마음을 가두지 않으려 한다.
그 누구도
타인의 마음을 읽는 신은 아니니까.
한 마디의 용기가
사랑의 첫 문장이 될 수 있다면
나도 늦게나마, 그것을 쓰고 싶다.

“사랑합니다. 미안했어요. 고마웠어요.”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말들,
그리고, 너무 늦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도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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