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사라지는 일은 참으로 조용하다.
시끄러운 퇴장은 언제나 낮의 몫이고,
밤은 말없이 자신을 거두어들인다.
내가 사는 이 소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어둠이 몸을 누이고,
새벽이라는 이름의 숨결이 창가에 맺히는 순간,
나는 조용히 커튼을 젖혔다.
그 순간 펼쳐지는 황금빛 바다 풍경은 감동이다.
운이 좋아서인지 아침마다
눈부신 동해의 일출을 보는 특권을 누린다.
이 시간마다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지는
매일 달라지는 마법 같은 시간을 만난다.
먼동이 터진다는 말이 참 그럴듯하다.
마치 하늘 어딘가에서 빛이 조금씩 터지고,
피어나는 듯했다.
잉태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세계가
서서히 빛을 품어내며 태동하는 그 시간
그것은 분명 밤과 낮의 경계가 아닌,
현실과 꿈의 경계였다.
거리는 아직 잠들어 있었지만,
건물들은 어렴풋이 깨어나고 있었다.
낮 동안 날카롭게 솟구쳤던 철골과 유리는,
새벽빛에 씻긴 듯 부드럽고 둥글게 변해갔다.
콘크리트의 모서리도
빛의 무게 앞에서는 가라앉듯 수그러들었고,
아파트 외벽마저도 숨을 고르듯
고요히 떨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이 도시에 처음 와 본 사람처럼
낯설게 숨을 들이켰다.
모든 것이 비로소 있다는 느낌,
존재의 본질이 빛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누군가는 말했었다.
새벽은 하루 중 가장 고독한 시간이라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시간에 혼자인 것이 다행스러웠다.
누구와도 나누지 않아도 되는,
말의 필요조차 사라지는 고요.
그 안에서 나는 삶을 다시 읽었다.
불안이라는 이름의 긴 그림자가 물러가고,
그 자리에는 서늘한 평온이 자리를 틀었다.
어둠 속에서 내내 웅크리고 있던 감정들이
빛을 맞으며 서서히 형태를 갖춰갔다.
두려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지고,
슬픔은 바람처럼 창밖을 흘렀다.
그리하여 나는,
새벽의 이 도시를 명상이라 이름 붙였다.
이 시간이야말로 삶의 가장 깊은
침전물이 가라앉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고통과 기쁨, 희망과 절망이
모두 한 잔의 물처럼 고요히 담기고,
그 위로 빛이 쏟아진다.
건물의 벽면에 비친 햇살은
마치 내 마음의 수면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고,
전날의 상처마저도 환한 채색을 입는 듯했다.
창밖의 나무들이 먼지 낀 금빛을 입고,
아직 반쯤 잠든 사람들의 창문도
빛으로 봉인된다.
그 사이로 고요한 새벽 공기를 가르는
한 사람의 걸음이 보였다.
그도 나처럼 이 시간에 깨어,
이 도시에 나직이 묻히고 있는 것일까.
순간, 우리는 각자의 고독 속에서
서로를 닮았다. 말을 건넬 필요도 없이,
그저 이 새벽을 함께 살아낸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다.
삶은 늘 이처럼 한 끝 차이다.
절망과 희망, 무너짐과 회복, 고독과 충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다름 아닌 빛이라는 것을,
나는 이 도시의 새벽에서 배웠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나에 대한 깨달음이기도 했다.
누군가의 눈에는 희미한 새벽일지라도,
나에겐 찬란한 시작이었다.
세상은 날 바꾸지 않았지만,
이 새벽의 빛은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나는 안다.
새벽은 단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가 매일 새롭게 깨어나는
의식의 문턱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고요한 도시에서,
나 또한 한 점 빛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