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언제나 가장 먼저,
가난한 자의 어깨에 내려앉는다.
바람은 무딘 칼이 되어 살을 벤다.
사람들의 시선은 모서리를 돌아,
그들을 외면하고 스쳐 지나간다.
거리는 따뜻한 집의 반대편에 있다.
벽돌로 세운 집이 아닌,
지하도, 역사, 공원의 후미진 곳에
이름도, 존엄도 지워진 절망하는 이들이 산다.
그곳에서 사람은 사람이 아닌 듯 살아간다.
여러 해 전 겨울, 노숙인 급식 봉사를 나갔다.
패딩을 껴입고 손에 국자를 들고서,
얼어붙은 그들의 눈동자와 마주했다.
추위를 이기려는 듯 어깨를 웅크리고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낡고 허름한 옷 속에
웅크린 삶들은 말이 없었고,
눈빛은 대체로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한 노인이 눈에 들어왔다.
차디찬 바닥 위,
종이상자를 겹겹이 쌓아 만든 자리.
그 위에 그는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채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은 기도와도 같았다.
그의 몸에서는 인간의 냄새가 아닌,
시간의 냄새가 났다.
삶을 지나는 세월의 먼지,
오래된 비애가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듯했다.
“많이 드세요.”
국을 건네자,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입가엔 미세한 떨림이 일었다.
“춥지 않으세요?”
내 물음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익숙해서 괜찮소.”
익숙하다는 말이
그토록 아플 수 있는지,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추위와 고독,
그리고 외면에 길들었다는 것.
그건 몸이 아니라 마음부터 얼어붙는 일이다.
촛불이 안에서부터 천천히 꺼지듯,
사람은 그렇게 스러진다.
그에게도 자식이 있었다 했다.
한때는 남편이었고, 아버지였다.
하지만 어느 날,
세상은 그에게 조용한 판결을 내렸다.
“당신은 이제 혼자입니다.”
회색빛 얼굴,
바람에 나부끼는 희끗한 머리카락.
늘 그 자리에 있던 그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소식을 들은 건 며칠 뒤였다.
찬 바닥 위에서, 그렇게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세상을 떠나셨다고 했다.
한 평도 안 되는 역사 통로가
마지막 안식처였다.
그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구청에서 유족을 수소문했지만,
자식들은 아무도 시신 인수를 원치 않았다.
“기억 안 납니다.” “가족 아닙니다.”
몇 번의 통화로 끝난 대화.
낯설지 않은 말들.
종종 있는 일이라 했다.
그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아무도’의 사람이었다.
사람 하나의 생이,
쓰다 버린 낡은 가방처럼 홀연히 사라졌다.
누구는 ‘본인이 선택한 삶’이라 했고,
누구는 ‘도움을 거부하던 사람’이라 변명했다.
하지만 나는 묻고 싶다.
그에게 진짜 선택지가 있었던가.
배제된 삶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의 또 다른 그림자다.
우리는 그에게 살아갈 수 있는 선택지를
얼마나 주었는가.
나는 그의 자리에 서본다.
오래된 이불 속,
파도처럼 출렁이는 기억들이 있었을까.
자식의 어린 웃음소리,
작은 식탁 위의 고요한 웃음
사랑했던 사람과 나눈 늦은 밤의 대화,
삶이란 끝내 그런 사소한 것들의 연속이 아닐까.
하지만 그 연속이 끊긴 곳,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역사 통로 끝에서,
그분은 어떻게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아니, 삶을 어찌 견뎠을까.
그의 빈자리 위엔
비닐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한때 누군가 앉아 있던 자리,
이제는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자리.
고독은 그렇게 조용히 자리를 차지한다.
장례는 구청의 예산으로 치러졌다.
예배도 없었고, 눈물도 없었다.
남은 건 서류와 냉기뿐.
그의 인생 전체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자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왜 우리는,
그가 한때 누군가의 아버지였고,
연인이었고, 친구였고,
뜨거운 청춘을 살아낸 사람이었다는 것을
자꾸 잊는가.
이름을 지우고, 존재를 지우고,
죽음마저도 삭제하는 사회.
복지의 사각지대는 시스템의 오류가 아니라,
무관심의 구조다.
누군가의 외면은,
또 다른 누군가의 절망이 된다.
가끔 생각한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땐 울음을 터뜨리지만,
죽을 땐 침묵 속에 가야만 하는가.
세상은 말한다. ‘나만 잘 살면 된다’고.
하지만 정말 그런가.
벽 너머의 추위는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닿는다.
인간은 연결된 존재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 또한 사람됨에서 멀어진다.
따뜻한 식사 한 끼,
거칠고 앙상한 손을 꼭 잡아주는 일.
그 작은 온기가,
누군가에게는 생의 마지막 불빛이 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문명의 옷을 입었지만,
마음은 점점 헐벗고 있다.
다시 따뜻한 것을 입혀야 한다.
그것은 규제가 아닌 사랑,
시스템이 아닌 눈빛, 복지가 아닌 관심이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밤의 골목은 어둡다.
그러나 아주 가끔,
그 안에 켜진 작은 등불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밝힌다.
우리는 그 등불이 되어야 한다.
잊힌 이들을 위한,
아주 작은 불빛. 아주 따뜻한 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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