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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바다

바다는 단 한 순간도 같은 얼굴을 한 적이 없다.
아침에는 비취색 실크처럼 부드럽다가도,
한낮이 되면 태양의 칼날 아래
은빛 파편을 흩뿌린다.
해가 질 녘에는 불타는 노을을 삼키며
깊고 어두운 고동색으로 가라앉고,
밤이면 달빛을 껴안은 채 검은 비단을 펼친다.

그러나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변화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절대적인 것.
끊임없이 흐르고 일렁이지만,
자신의 본질을 잃지 않는 완전한 자유.
인간이 붙잡을 수도, 가둘 수도 없는 것.

바다를 마주할 때마다
가끔은 경외심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끝없는 넓이와 깊이를 지닌 존재이면서도
단 한 방울의 물방울이기도 한 것.
가슴을 열어 무엇이든 품어주지만,
때로는 무자비하게 삼켜버리는 존재.

바다는 인간의 발걸음을 기억하지 않는다.
수많은 항해와 정복, 피로 물든 역사를 삼켜도
그 표면엔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는다.
오히려 거대한 파도로 덮어버리며
우리의 노력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상기시킨다.

하지만 바다를 바라보는 인간은 다르다.
우리는 바다를 향해 항해를 떠나지만
결국 돌아와야 한다.
우리의 삶은 시작과 끝이 정해져 있고,
손에 쥔 것들은 언젠가 흩어진다.
우리는 바다를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다를 동경한다.
끝없는 자유를, 경계를 허무는 무한함을.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얻고 잃으며 살아간다.
그러나 바다는 잃지도, 얻지도 않는다.
그것은 단지 순환할 뿐이다.
밀물과 썰물이 반복되고,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바다로 돌아온다.
바다는 처음부터 모든 것이었다.
태초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먼 훗날에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바다를 찾아간다.
길을 잃은 자는 바다 앞에서 방향을 찾고,
슬픔을 품은 자는 바다를 바라보며 울음을 삼킨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자들이 바다를 향하는 것은,
그곳이 물 한 모금 없이도 갈증을 해소해 주고,
부드러운 어깨로 품어주는
위로의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바다는 위로하면서도, 가르친다.
그것은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간다.
밀물과 썰물, 상승과 추락, 승리와 패배의 반복.
우리는 바다를 바라보며 삶 또한
그러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지는 것,
손안에 담기지 않는 것의 의미를 배운다.

바다 앞에서 인간은 한없이 작아진다.
그러나 그 작음 속에서 오히려 빛난다.
바다는 우리의 삶을
무화(無化)시키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
우리는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신의 유한함을 깨닫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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