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 사이를 지나왔다.
손끝을 스치고, 미소를 주고받으며
웃음과 대화가 넘실대는 자리에서
그렇게 많은 말을 나누었건만,
남는 것 없이 마음 깊은 곳에선 늘 혼자였다.
부산함이 걷힌 저녁 하늘 아래 홀로인 시간.
수많은 말들이 스쳐 갔으나,
그 어느 것도 가슴에 닿지 않았다.
머물지 못한 이야기들, 스며들지 못한 시간 들.
남은 것은 오직 공허한 고독뿐.
그제야 깨닫는다.
진정 만나야 할 사람은 말이 별로 필요 없는
눈빛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사람.
아니, 어쩌면 이미 내 안에
깊숙이 자리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빛과 그림자의 경계를 넘어
고독의 가장자리에서 기다리는 한 사람.
소란스러운 하루가 저물고,
모든 관계가 희미해진 뒤에도
끝끝내 남아 있는, 이름 없는 그리움.
대신 바람이 말을 걸고,
침묵이 더 많은 것을 들려주는 사이,
우리 사이에는 기다림이 깃든다.
이미 오래전부터 내 안에 머물러 있던 사람을
시간의 잔물결 너머에서, 비로소 만나려 한다.
그렇게 만나야 할 사람.
수많은 인연의 그림자를 딛고 지나온 끝에
겨우 도달한, 단 하나의 존재.
그 사람을 위해, 나는
오늘도 고요를 걸어 나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