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아침,
창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먼저 손을 내민다.
반짝이는 햇살이 눈을 간지럽히고,
잔설이 묻은 나무줄기는
서늘한 광택을 띠고 있다.
먼 곳에서 들려오는 까치 울음이
이마를 스치듯 지나간다.
겨울 정원에는 잎이 없다.
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이 텅 빈 곳에서 무언가를 본다.
흙 속에서 아직 깨어나지 않은 뿌리들의
미세한 꿈틀거림을,
가지 끝에 보이지 않는 새싹의 조그만 예감을.
지금 이곳은 침묵에 싸여 있지만,
그 안에는 다가올 생명의 속삭임이 있다.
여름이면 이 자리에 초록이 번성했었다.
잔디 위로 제비꽃이 피고,
개미 떼가 분주히 오갔다.
그러나 지금은 흔적조차 없다.
바람이 스치고 간 자리마다 공백만이 깊어진다.
그러나 나는 빈자리에서 무엇인가를 본다.
얼어붙은 땅 아래 숨어 있는 씨앗을,
어둠 속에서도 뿌리를 키우는 시간을,
아직 오지 않은 봄을 본다.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앙상한 가지들이
하늘로 향해 갈라진 균열처럼 뻗어 있다.
누군가 이 나무를 스치듯 보면
그저 겨울을 견디는 텅 빈 형상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나무가 지나온 시간을,
눈보라 속에서도 단단히 서 있던 순간들을.
여름날 무성했던 잎들을 기억하기에,
지금의 빈 가지 또한 온전히 보인다.
마당 가장자리에 선 바위 틈새에서
마른 이끼가 바람에 떨고 있다.
어느 날, 나는 친구와 숲길을 걸었다.
그는 발끝에 밟히는 이끼를 보고 지나쳤지만,
나는 그 작은 녹색의 숨결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이끼는 물을 저장하고,
숲의 기억을 간직한 채 천천히 자라,"
그러나 그는 그냥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미끄러운 돌 위의 풀일 뿐이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바람을 맞아도,
우리는 서로 다른 세상을 본다.
어떤 이는 깊은 밤하늘에서 별을 찾고,
어떤 이는 그저 어둠만 본다.
어떤 이는 바다의 수평선 너머를 상상하고,
어떤 이는 물결의 끝에서 시선을 거둔다.
세상은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다.
무심코 지나친 돌멩이 하나에도
수억 년의 시간이 새겨져 있고,
나무 한 그루에도 수많은 생명이 기댄다.
그러나 그것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
같은 빛을 보더라도 어떤 이는 단순한 밝음으로,
어떤 이는 수천 갈래의 색조로 읽어낸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깊어진다.
세상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내가 바라보는 것만큼 세상은 깊어지고,
들으려는 만큼 소리는 선명해진다.
눈앞에 펼쳐진 겨울 정원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그저 메마른 풍경이라 말하겠지만,
나는 빈 가지 사이에서 흐르는
수액의 울림을 듣고,
얼어붙은 흙 밑에서 자라는
뿌리의 미세한 떨림을 본다.
어둠 속에서도 빛은 있다.
다만 보려는 눈이 필요할 뿐이다.
Note
글쓰기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리게 하며,
안 되는 일을 되게 하는 창조적인 과정이다.
숨겨진 의미와 가치를 발굴하여
세상에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하다.
글을 쓰면서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 것처럼,
꾸준한 노력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