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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길 위의 쉼표

바람이 가만히 내 등을 떠미는 날이면
나는 발끝의 줄들을 느슨히 풀어둔다.
어디로든 흘러가 보라고,
시간도 목적도 잊어버리고.

길모퉁이를 돌 때마다 무언가를 놓쳐도 좋겠다.
떨어지는 햇살이 내 어깨에 내려앉고,
구름 한 조각이 내 머리 위를 스쳐도,
그저 가만히 미소로 받아들이며.

발자국들이 쌓여 하나의 문장을 이루듯
오늘은 쉼표를 찍으며 걷고 싶다.
모퉁이마다 물기를 머금은 햇살이 반짝이고
나무 위에 이름 모를 새가 지저귀는 이 길 위에서.

어디든 닿을 수 있는 길이니
굳이 끝을 정하지 않아도 좋다.
잠시 벤치에 기대어 눈을 감으면
내 안에서 무언가 조용히 자라고 있을 테니.

그러다 문득, 뒤돌아보면
번거로이 지녔던 것들이 조금은 가벼워져 있고
나는 나에게로 돌아가는 길을
조금 더 편안히 걸을 수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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