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 문턱을 넘었다.
문이 닫히며 들려온 소리는
구속의 서막 같았다.
내 앞에 펼쳐진 것은
낯설면서도 익숙한 광경.
높이 솟은 심판대와
차디찬 바닥의 무늬까지도
어딘가 내 안의 기억을 훔쳐본 듯했다.
“피고인,
당신은 스스로 이곳에
출두한 죄를 인정합니까?”
목소리는 공간의 중심에서 흘러나왔으나,
어디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답할 수 없었다.
답이 무엇인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당신은 눈길 하나로 한 영혼을 전복시키고,
숨결 하나로 수많은 밤을 뒤흔들었습니다.
변명할 기회를 드리죠.”
나는 침묵했다.
머릿속에서 단 하나의 이름만 맴돌았다.
내가 이곳에 선 이유, 모든 시작의 불씨.
그들이 증거라며 내미는 것은
낯선 장면들이었다.
당신의 손길이 머문 자리에 새겨진 깊은 흔적,
미소 하나로 멈추어버린 시간,
그리고 당신 없이 견딘 적 없는
공허의 긴 밤들.
모든 것이 조각조각,
나의 세계를 해체하고 있었다.
“피고,
당신은 중독의 공급자로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사랑의 이름으로 저지른 범죄를
고백하시겠습니까?”
그 순간, 나는 마침내 깨달았다.
내가 체포된 것은 당신 때문이 아니었다.
당신을 사랑했던 나의 선택,
그 선택이 빚어낸
무수한 모순의 죄목들이
나를 이 법정으로 끌고 온 것이었다.
“유죄를 인정합니다.”
심판대는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판결이 내려지고 있었다는 것을.
그날 밤, 나는 한껏 흐느끼며
당신을 사랑했던 기억들을 품에 안고 잠들었다. 꿈속에서도 법정의 선고는 반복되었다.
“당신은 사랑의 죄로,
영원히 자유를 박탈당한다.”
그러나 묘하게도,
나는 기쁘게 그 구속을 받아들였다.
그것이 당신을 떠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