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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손금에 새긴 이름

나무들은 깊이 잠들고
바람마저 길을 잃은 시간.
손바닥에 바다를 만들고,
그 안에 작은 섬처럼 그대의 이름을 새겼다.
물방울처럼 조심스레, 처음엔 잉크 같았으나
곧 불꽃이 되어 일렁이며 타올랐다.
이름은 점이 되고, 점은 선이 되었다.
선들은 얽히고설켜
내 손바닥 위에 별자리를 만들었다.
별자리는 그대가 머물던 하늘의 조각,
세상 모든 강과 산을 품었고,
그 길 끝에 그대가 있었다.

그러나 손은 차갑다.
불처럼 뜨겁던 이름이 한 줄기 얼음이 되어
내 살갗을 파고들 때, 나는 깨닫는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건
영원히 녹지 않을 얼음불을 품는 일.
꽃잎이 지고 난 뒤 빈 가지가 달빛에 젖는 일,
얼어붙은 대지 속에서
아직 피어나지 않은 씨앗을 믿는 일과 같았다.
그대를 사랑한다는 건 기다림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스스로 불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불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새벽을 쓴다.

그리하여
나는 흐르는 눈물로 불을 지피고,
얼음과 불의 춤으로
그대 이름을 손금 속에 새겼다.
이제 내 손바닥은
그대라는 우주를 품은 작은 하늘,
별들이 살아 숨 쉬는 나만의 지도.
그 길을 따라 나는 매일 걸어간다.
그대를 만나기 위해,
그대를 떠나기 위해.
그리고 끝내,
다시 그대에게로 돌아오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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