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면대 앞에서 칫솔을 들다 멈칫했다.
바닥에 떨어진 비누 조각 하나가
평형을 무너뜨렸다.
별것 아닌 그 낯선 위치 하나가
아침의 흐름을 멈추게 했다.
나는 다시 그것을 집어
제자리에 올려두고서야 편안해졌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일상은 이런 사소한 변화조차
이물감으로 느껴지게 된 걸까.
낯섦은 늘 느닷없이 찾아온다.
비누의 위치처럼, 커튼의 주름처럼,
새로 산 양말의 압박감처럼.
무언가 익숙하지 않다는 건
그저 새롭다는 말의 반대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뿌리내린
질서에 균열을 내고,
기억과 감각의 지도를 뒤흔드는 일이다.
불편하고, 당황스럽고,
때로는 서글픈 일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섦은 삶의 가장 생생한 순간이기도 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한 어느 젊은 날,
낯선 공간. 처음 듣는 이름.
습관이 허용하지 않던 시간표.
서랍을 열었는데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짐작할 수 없다는 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내 세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사람들과의 대화는 미묘하게 엇나갔다.
미소를 띠어도,
그 안에 묻힌 맥락을 따라가지 못해 허둥댔다.
어제까지 내게 완벽했던 언어는
여기에선 쓸모없는 암호처럼 느껴졌다.
처음에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텼다.
내가 만든 익숙함의 요새에
틈을 주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낯섦은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정확히는,
내가 낯섦 안으로 천천히 녹아들었다.
예전에는 두려웠던 예측 불가능한 대화가
오히려 내 사고의 폭을 넓히고,
몰랐던 규칙 안에서
나만의 리듬을 찾아가고 있었다.
익숙함의 결핍은 처음엔 공포였지만,
지금은 감각의 확장이 되었다.
이쯤에서 나는 익숙함이란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그것은 어쩌면 기억이 만든 감옥이 아닐까?
우리는 무언가를 ‘편안하다’라고 느끼는 순간,
그 감각을 다시 경험하기 위해
동일한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루틴은 나를 보호하지만
동시에 감각을 마비시킨다.
점점 더 적게 느끼고, 덜 놀라고,
거의 감탄하지 않는다.
결국, 익숙함은 망각의 또 다른 이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점점 무뎌지고,
잊고, 자신조차 놓친다.
익숙함을 갈망하는 건
나이가 들수록 더욱 집요해진다.
이는 단지 육체의 쇠약 때문이 아니다.
삶의 중심을 잡기 위한
본능적 욕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심을 지키겠다는 이름으로
변화를 거부한다면,
그것은 성장이 아닌 정체다.
안정이란 이름 아래 나 자신을 고정할 때,
나는 살아 있으되 흐르지 않는 물이 된다.
지금의 나는 낯섦 속에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예전처럼 질서를 복원하려는
익숙함이 아니다.
오히려 혼돈을 수용하려는 유연함,
불확실성을 즐기려는 용기다.
커피잔을 놓는 자리도, 인사하는 말투도,
점심시간에 먹는 음식조차도 이전과는 다르다.
하지만 그런 다름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찾아간다.
낯섦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다.
그것은 내 안의 감각을 깨우는 북소리다.
반복된 일상이라는 두꺼운 이불을 걷고 나와,
새로운 바람에 맞서는 일.
그것이야말로 진짜 삶이다.
나는 더 이상 그림자만 좇지 않으려 한다.
벽에 반사된 과거가 아닌,
창 너머의 햇빛을 바라본다.
그래서 나는 오늘 늘 걷는 길을,
일부러 다른 길로 돌아 집에 왔다.
걷던 길에서 몇 걸음 옆으로만
벗어났을 뿐인데, 길의 냄새가 달랐다.
풍경이 생경했다.
그렇게 작은 낯섦이
내 안의 오래된 감각을 깨웠다.
누군가는 그걸 사소한 변화라 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것을 ‘살아있음’이라 부르고 싶다.
우리는 익숙함이라는 작은 세계 안에
너무 오래 갇혀 있었다.
이제는 문을 열고 나가야 한다.
새바람이 불고, 햇빛이 다르게 기울 때,
우리 안을 멈춰 있던 시계도 다시 움직인다.
낯섦은 두렵지만,
그것은 삶이 우리에게 보내는 초대장이다.
초대장을 거절하는 대신,
나는 오늘도 손끝을 떨며
새로운 버튼을 누른다.
삶의 문턱은
늘 낯섦으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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