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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음악 없는 삶

음악이 없는 세상을 떠올려본다.
아침이 깨어나도 숲은 잠들어 있고,
이별하는 마음 곁엔
공기마저 침묵하며 떠돈다.
말이 멈춘 자리마다
소리는 비어 있고,
그 빈틈으로 슬픔은 곧장 스며든다.

사람들은 그제야 알게 되겠지.
도무지 닿을 수 없던 마음과 마음 사이,
음악이 조용히 다리를 놓고 있었다는 것을.

이별하는 연인들의 골목 어귀엔
피아노 소나타가 사뿐히 내려앉는다.
눈물보다 조용하고,
기억보다 선명한 멜로디가
뺨을 타고 흘러내리며 속삭인다.
괜찮아, 이 밤도 언젠가
노래가 되어 너를 감쌀 거야.

마음이 엇갈리던 부부의 갈등도
드럼의 박동이 조용히 몸을 흔들어 준다.
분노는 리듬에 휘감겨 잠시 춤을 추고,
끝내 제 박자를 찾아간다.
서로를 미워했던 마음조차도,
어차피 같은 비트 위에 살아야 하기에
음악은 그들을, 다시 이어준다.

삶의 끝자락에 선 노인의 귀엔
조용히 헤드폰이 얹혀 있다.
오보에의 숨결이 가슴을 쓰다듬고,
이승의 마지막 페이지엔
은빛 오르간의 여운이 머문다.
그렇게 죽음조차 음악 앞에선
조용히 수묵화처럼 번진다.
그건 음악이 보내는,
세상에서의 마지막 인사.

음악 없는 삶은 창이 없는 집과도 같다.
빛은 들지 않고, 숨은 막힌다.
우리는 결국,
말보다 리듬에 먼저 반응하는 존재.
기쁨이 넘치면 노래로 쏟아내고,
슬픔이 고이면
누구도 말하지 못한 고백을
현의 떨림으로 흘려보낸다.

음악 없는 삶은,
살아 있다는 말조차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믿는다.
음악은 인간의 두 번째 심장이라고.
보이지 않는 상처 위에 소리를 바르듯,
하나의 음, 하나의 쉼표가
삶을 다시 걷게 한다.

바흐가 흐르는 거실에서
뜨거운 찻잔을 감싸 쥐는 순간,
삶은 고요한 축제가 된다.
우린 어차피,
음악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고통마저 조율하며,
사랑이 되지 못한 말들을
하모니로 남기며.

오늘도 나는 노을이 번지는 벤치에 앉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모든 순간이, 결국 음악이었다는 것을.
숨소리도, 침묵도,
사랑도, 이별도, 삶조차도
하나의 거대한 악장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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