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벽돌 하나, 조용히 누워 있었다.
모서리는 깨지고,
무언가를 버텨냈던 흔적만이 남아 있다.
이제는 그저 부서진 파편처럼 보이지만,
나는 그 안에서
한 채의 집이 무너지려던 순간을 본다.
그 작은 파편에도 어떤 벽이 있었고,
그 벽 뒤엔 누군가의 삶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다.
세상에는 그런 이들이 있다.
말없이 누군가를 견뎌주는 존재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자신을 스스로 내어주며 버텨온 사람들.
기둥은 곧게 선다.
수직의 결심으로 땅을 딛고, 하늘을 받친다.
그는 버팀목이다.
어떤 날의 무게를,
어떤 이의 생을 묵묵히 감당하는 존재.
벽은 넓게 펼쳐진다.
사방을 감싸며
밖의 바람을 막고, 안의 마음을 품는다.
그는 다정한 경계다.
한 존재의 안과 밖을 나누면서도 이어주는 것.
기둥 없이 벽은 주저앉고,
벽 없이 기둥은 외로워진다.
그들은 혼자서는 건축이 되지 않는다.
서로에게 기댈 때,
비로소 하나의 집이 된다.
사람 사이도 다르지 않다.
어떤 날엔 누군가가 기둥이 된다.
말없이 곁에 서서 누군가를 지탱한다.
하지만 삶의 지진은 예고 없이 찾아오고,
기둥조차 금이 간다.
그럴 땐 벽이 옆에 선다.
기울어진 기둥에 조심스레 기대어
흔들리는 중심을 함께 잡아준다.
누군가를 받쳐주는 방식은
언제나 강함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때로는 그저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여기 있다’라는
조용한 말 한마디만으로도 충분하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비바람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기 위해,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위해.
벽은 사람의 손길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날은 창을 내고,
어떤 날은 문을 열며,
기둥이 가진 강직함을 부드럽게 감싸안는다.
벽이 없다면, 기둥은 그저
묵직한 하중을 홀로 견디는 처지가 된다.
벽은 안과 밖을 나누지만,
그 나눔만큼 연결을 이룬다.
그것이 벽의 역설이자, 사랑의 방식이다.
‘너’와 ‘나’를 가르지만,
그 경계 안에서 ‘우리’라는 공간을 만든다.
벽도 때로는 기둥이 된다.
무게를 견디고, 그림을 걸고,
침묵 속에서 존재를 감춘다.
그 또한 헌신이다.
그래서 어떤 집은
기둥과 벽의 경계가 흐려진다.
서로서로 조금씩 닮아갈 때,
그 집은 더 깊고 단단해진다.
사람 사이에도 정답은 없다.
늘 버팀목일 순 없고,
언제나 의지할 수도 없다.
어떤 날은 기댈 수밖에 없고,
어떤 순간은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
기둥과 벽,
그 단순한 구조 안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복잡하고도 섬세한 방식이 담겨 있다.
관계는 역할이 아니다.
한 번 기둥이 되었다고 해서,
늘 그래야 할 이유는 없다.
기둥도 쉬고 싶고,
벽도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다.
중요한 건 고정된 역할이 아니라,
흐름에 따라 서로를 조율하는 유연함이다.
서로의 무게를 감당하려는 마음,
그 마음이 곧 관계다.
누군가 쓰러지려 할 때,
기꺼이 기대어주는 일.
하지만 그것을 의무가 아닌
사랑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정해진 답은 없다.
누군가는 무게에 짓눌리고,
누군가는 빈자리에 아파한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혼자서는 집이 될 수 없다는 걸.
기둥만으로는 바람을 막지 못하고,
벽만으로는 하늘을 잇지 못한다.
인생이라는 집은
서로 기대는 방식으로 완성된다.
우리는 각기 다른 재목으로,
다른 결을 지닌 채 태어났지만
어딘가에서 만나
서로를 지탱하며 살아간다.
흔들려도, 기울어도 괜찮다.
어느 날은 내가 기둥이 되고,
어느 날은 당신이 벽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무너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짓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