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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인연

물빛 바람이 스치면
꽃잎은 아무 말 없이 떨리지만
그 떨림엔 언제나, 이유가 있습니다.
어딘가, 누구에게든
닿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지요.

사람도 그렇습니다.
눈빛이 스치는 찰나,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마음을 조용히 건넵니다.
말보다 먼저 닿는 온기가,
때론 가장 깊은 언어가 됩니다.

만남보다 이별이 더 익숙하고
말보다 눈짓이 앞서는 세상,
인연은 점점 얇고 투명해져
첫 인사가
곧 마지막이 되는 날도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믿습니다.
한 번의 눈 맞춤이
긴 겨울을 건너는 등불이 될 수 있다고.
한 마디 진심어린 관심이
잠 못 드는 밤의 명상곡이 될 수 있다고.

당신과 나의 인연이
소리 없이 자라나는 나이테처럼
해마다 조금씩, 조용히 깊어져
그리움보다 단단한 믿음으로
서로를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시간이 우리를
서로 다른 풍경 속으로 데려가더라도
이 인연만은 바래지 않기를,
추억이 아닌 언제나 지금처럼
살아 숨 쉬는 마음이기를.

세상 끝 어느 언덕에서
마지막 저녁을 함께 바라볼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살아온 날들 가운데
가장 따뜻한 인연은 당신이었다”라고.

수많은 마침표가 지나간 뒤에도,
마지막 문장 끝에
‘고마워’라며 미소 짓는 그 한 사람이
당신이기를,
그리고 나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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