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다는 흐르는 물과 같다.
막아두면 고여 썩고,
흘려보내면 어느새 맑아진다.
우리는 저마다 크고 작은 물길을 품고 살아간다.
마음속 물이 넘칠 때,
어딘가로 흘려보내고 싶은 충동이 인다.
그 순간, 우리는 수다를 떤다.
사람들은 수다를 가벼운 것이라 여긴다.
쓸데없는 말의 집합이라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수다는 단순한 잡담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의 배수로이자 감정의 정화 장치다.
우리는 수다를 통해
마음속에 가라앉은 불순물을 걸러내고,
탁한 생각을 씻어낸다.
때로는 얽히고설킨 감정이
한바탕 수다로 풀어지고,
숨겨둔 아픔이 뜻밖의 말 한마디에
스르르 녹아내린다.
그러나 세상은 종종 수다에 인색하다.
말실수에 대한 두려움은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든다.
잘못한 말 한마디가 꼬리를 물어 오해를 낳고,
날개 돋친 듯 퍼져 나가기도 한다.
험담은 그중에서도 가장 독한 바람.
누군가의 말은 말끝마다 갈라지고,
그 조각들이 또 다른 입을 타고 흐르며
서늘한 그늘을 드리운다.
험담은 듣는 이도, 말하는 이도 불편하게 한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번져가
결국 우리 사이를 탁하게 만든다.
어떤 말은 차라리 흘려보내야 하고,
어떤 말은 차분히 가라앉혀야 한다.
침묵이 강요되는 곳에서
자유로운 사유란 존재하기 어렵다.
말의 흐름이 멎으면, 생각마저 갇혀버린다.
하지만 더 너그러운 세상이라면 어떨까?
실수해도 다시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지고,
지나간 말은 바람처럼 흩어질 수 있는 곳.
그런 곳에서라면
우리는 더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말이 넘쳐날 때도 문제다.
유난히 말이 많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
듣는 일에 지쳐 마음이 고갈되는 순간이 온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듣는 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적절한 침묵은 대화의 여백이자 쉼표다.
혼자서만 이야기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점점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말을 줄이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배려가 필요하다.
말은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하고,
깊이 새겨둘 줄도 알아야 한다.
수필도 결국 자기 자신과의 수다다.
글을 쓴다는 것은 조용한 공간에서
스스로와 마주 앉아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다.
단어 하나를 고르고, 문장을 다듬으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찾아간다.
그렇게 문장을 쌓아 올리다 보면,
글 속에 자신의 흔적이 남고,
생각의 물길이 정리된다.
좋은 수필을 읽을 때 느껴지는 친밀감은
마치 믿을 만한 친구와
깊은 대화를 나누는 듯한 감각.
좋은 친구가 나의 말을 잘 들어주듯,
좋은 글도 독자의 마음을 조용히 어루만진다.
어느 날 문득, 오래된 친구를 만나듯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대화가 한 편의 수필로 남는다면,
우리는 말과 글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고,
조금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