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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이별

네가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른 잎들이 바람에 쓸려가듯,
너의 그림자도 한없이 가벼웠다.
그러나 그날의 바람은 유난히 무거웠고,
나는 묵직한 시간 속에서
너를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멀어지는 발걸음이 멈추기를 바랐으나
입술에 맴돈 이름은 끝내 흩어지고 말았다.
손끝이 닿을 듯 말 듯,
그 순간을 붙잡아야 했는데
머뭇거리던 사이
너는 흘러가고 나는 남겨졌다.

한때는 창가에 부딪히던 빗소리마저도
너와 함께 듣던 날의 온기로 남았는데,
뒤늦게야 깨닫는다.
너의 말끝마다 깃든 온기,
무심코 지나쳤던 눈빛의 깊이,
너는 오래도록 손을 내밀고 있었음을.

그러나 손을 놓은 이는 나였음을.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
너는 내게서 멀어진 것이 아니라
내가 너를 놓아버린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가장 잔인한 이별이었음을.

먼 길을 돌아와
내가 서 있던 자리에 서니 그제야 보인다.
너는 서서히 멀어진 게 아니라,
그저 기다리다 지친 것이었음을.
등을 보인 것이 아니라,
돌아봐 주길 바란 것이었음을.

이제야 나는 안다.
사람의 마음은 손끝으로 닿아야 하고,
머뭇거림 속에 묻힌 말들은
끝내 영영 닿지 못한다는 것을.
놓쳐버린 손의 온도를,
그제야 아프도록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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