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다녀간 날은
해가 질 녘 하늘이 유난히 길었습니다.
그날의 구름은 아직도 저기 걸려
당신의 발자국을 흉내 냅니다.
사랑이 서툴러 단정한 문장이 아니어서
우리는 쉼표 사이를 떠돌았고
어느 날은 마침표 앞에서 멈칫했지요.
그러다 결국, 당신은 예고 없이 떠났습니다.
그런데도 나는
문득문득 당신을 읽습니다.
책갈피 속 마른 꽃잎처럼
이름 없이 남은 문장을 더듬습니다.
문득 바람이 이름을 부르고
나뭇잎이 조용히 속삭이면
그제야 깨닫습니다
내가 아직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당신은 모르겠지요
어느 날 길을 걷다 문득
나도 모르게 당신을 부르던 그 순간을
그때처럼, 당신은 모르겠지요.
아, 당신은 모르겠지요.
오늘도 바람 소리는 당신 목소리로 불고
나는 그 몇 마디에 기대어
한동안, 그저 살아낸다는 사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