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병 속에서 모래가 쏟아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본다.
사막의 모래바람처럼,
시간은 쉼 없이 흐르고 또 흐른다.
손가락을 뻗어 모래 한 줌을 움켜쥐면,
알갱이들은 작은 틈을 비집고 흩어져 버린다.
붙잡으려 하면 할수록
손아귀를 빠져나가는 시간의 본질.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이 모래의 속도를 조급하게 재촉하기 시작했다.
처음 모래시계를 만든 사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간을 가두려는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흘러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고자 했던 것일까.
유리병 속 모래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며
아주 정확한 흐름을 만든다.
마치 한 점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단 한 알갱이도 거스를 수 없는
필연적 운명을 지닌 듯하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알았을까.
정작 우리가 사는 시간은
그렇게 반듯하고 일정하지 않다는 것을.
옛사람들은 해가 뜨고 지는 것으로
하루를 헤아렸고,
새가 울고 바람이 부는 것으로 계절을 짐작했다.
그들의 시간은 흐름이었고, 기다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초 단위까지 계산된 시간 속에서
허겁지겁 살아간다.
마치 모래시계를
거꾸로 뒤집을 수 없다는 강박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하다.
지금 우리는 모래시계 속에서
허둥거리는 작은 알갱이 같다.
위에서 떨어지면 다시 올라갈 수 없다는 두려움,
끝없이 아래로만 쏟아져 내린다는 불안.
그래서 우린 매 순간을 빽빽하게 채운다.
일정표를 가득 메우고,
메일함을 끊임없이 확인하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순간을
붙잡으려 애쓴다.
어쩌면, 모래를 거꾸로 밀어 올릴 수 있다고
착각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래시계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알갱이들은 서로 부딪히며
제각기 다른 속도로 떨어진다.
어떤 것은 빠르고, 어떤 것은 느리다.
어떤 것은 유리 벽에 기대어 망설이고,
어떤 것은 힘차게 추락한다.
그러다 가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작은 알갱이 하나가 길을 막아
흐름이 멈추는 일도 있다.
그걸 보면서 문득 깨닫는다.
시간이란 그렇게 한 줄로
반듯하게 흐르는 것이 아니라고.
때로는 천천히 흘러도 괜찮고,
멈춰 서 있어도 괜찮다고.
흐름을 거스르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만의 속도를 찾으면 되는 거라고.
나는 이제 모래시계를 뒤집어 본다.
무심히 떨어지던 모래가 다시 위로 올라간다.
흐름을 거스를 순 없지만,
새로운 시작은 언제든 가능하다는 듯.
우리도 그러면 좋겠다.
무작정 앞으로만 달리지 않고,
때로는 멈추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러니 오늘은 잠시
모래가 가라앉기를 기다려 본다.
바람이 지나간 자리처럼,
파도가 머물다 간 모래밭처럼.
너무 서두르지 않고, 차분히 내려앉기를.
시간 속에서 흩어지지 않고,
나만의 자리를 찾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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