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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바위와 소나무

바위는 기억하지 않는다.
그 모든 아픔을,
갈라지는 소리와 뜨거운 날들을.
다만 비에 씻기고 바람에 굴려,
길 없는 길을
마침내 침묵으로 완성할 뿐이다.

그 바람에 실려 온
작고 보이지 않는 씨앗 하나가
바위를 안았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던 틈새에서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뿌리를 내렸다.

첫 싹은
무겁고 날카로웠다.
돌 속으로 파고드는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몰랐다.
그 고통이 언젠가
바위를 푸르게 물들일 운명을
품고 있었음을.

비가 내리면
바위는 물을 머금었다.
더 깊이,
더 오래 스며들게 하려
온몸을 뒤틀며 바친 그 습기는
소나무를 키웠다.

마침내 그늘이 생겼고,
그늘 속으로 새가 찾아들었다.
날갯짓마다 바람이 울고,
그 울음은
바위가 흘리지 못한
눈물 같았다.

어느 밤,
달빛에 비친 소나무의 그림자와
바위의 흉터가 포개질 때
비로소 깨달았다.
산다는 것은
서로의 결핍을
숨결처럼 나누는 일임을.

나는 생각한다.
살아가는 여로에서 마주친
내 안의 돌, 내 안의 풀꽃을.
그들은 누구를 위해
몸을 내어주고 피어났던가.
혹은 지금도 불모의 틈새에서
작은 씨앗을 기다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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