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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젊음의 껍질

바람은 내 손끝을 스쳐 갔다.
흙 내음에 스며든 시간의 가루는
저무는 해와 함께 무색이 되어
산등성이 위로 비워졌다.

나는 되돌아가지 않는다.
흘러간 강물에 발을 적시려는 자는
제 그림자만 더럽힐 뿐.
젊음의 껍질 속에는 숨죽인 칼날이 있었고,
그날의 바람은 내 눈물을 벗 삼았으니.

지금의 나는
천 번의 무덤 위를 걸어온 발자국,
천 갈래의 바람에 깎인 얼굴,
그리고 끝내 버리지 못한 온기다.

완벽하지 않아도 좋다.
별은 균열 속에서 가장 빛나고,
달은 흠집 난 거울을 비출 때
비로소 둥그니.

이 길 위에서, 나는 나의 무게를 안는다.
무지갯빛으로 부서진 어제의 조각들이
오늘의 뼈대를 이루고,
내일의 빛을 잉태한다.

다만 남은 것은,
심장 속에서 끊임없이 우는 새의 노래.
그 노래는 누구도 알지 못하지만
나는 안다.
그 음계가 가리키는 곳엔
보석보다 단단한 내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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