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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비운다는 것

남은 달력 한 장,
종잇장 같은 세월이
바람 틈에서 몸을 접는다.
한해를 움켜쥔 손바닥엔
무엇 하나 새기지 못했지만,
뒤집힌 손등엔 아직 미련의 그늘이 춤춘다.

비운다는 말이 하얀 연기처럼 사라져도
잡은 손아귀는 묵은 꿈의 파편들을 품는다.
비우려는 마음과 감추려는 욕망이
뒤엉켜 만드는 심연의 고동.

허공에 돌린 필름은
깨진 거울처럼 조각난 시간들.
번뜩이는 파편 위로 손끝이 스친다.
잡히지 않는 지난날, 쥐려다 비워버린 내일,
그 경계선 위에서 나는 갈대처럼 흔들린다.

그러나, 그러나.
바람은 틈을 찾아와
허물어진 날개를 어루만지고,
지친 마음 구석 어딘가에
다시 피어나는 싹을 심는다.
텅 빈 가슴 속에도
어김없이 돋아나는 새벽빛.

해마다 이맘때, 희망은 고요히 움트고
미완의 약속들은 또다시 몸을 채운다.
돌아오는 바람,
그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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