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전령이 싸늘하게 내려앉았다.
서리는 조용한 비극처럼,
소리 없이 겨울왕국의 침입을 알린다.
발자국 뒤로 깨어나는 얼음 밑 물의 숨결,
금이 간 거울 속에는
또 다른 계절의 환영이 어른거린다.
발끝에서 침묵을 깨는 바스락거림,
그 소리를 따라 어디선가 겨울의 날 선 칼날이
낡은 기억을 베려는 듯 은밀히 겨누고 서 있다.
그 칼날이 남긴 흉터에는
잊힌 얼굴들의 음영 속에 스며든
잔인한 웃음이 얼비친다.
나는 그 틈을 건너갔다.
어둠과 얼음이 서로의 생을 묶어둔 자리에서,
뒤엉킨 나무들 사이로 손을 뻗었다.
그 손끝에 닿은 것은
차갑고 투명한,
아직 부서지지 않은 시간의 조각들이었다.
깊은 곳에서는 물이 흐르고 있었다.
얼지 않은 문장들이
깨어지지 않는 침묵의 노래를 부르며.
그 위에 새겨지는 발자국은
얇디얇은 잎새 같은 의미를 남기고,
언젠가 사라질 온기로 길을 만든다.
얼음 너머 봄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손을 흔들지 않았다.
대신 겨울의 손길이
내 어깨를 붙들고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하얀 서리 위에서
얼어붙은 얼굴들이 나를 향해
무언가를 속삭이고 있었다.
그때, 나는 깨달았다.
이제 막 겨울이 시작되었음을.
봄은 아직 어디에도 없었다.
오직 흐르는 것만이 있을 뿐.
얼음 밑, 깊은 곳으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