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피에로

이 얀 2024. 12. 23. 02:21

그는 무대 위에서 웃음의 화신이었다.
붉은 코는 세상의 중심 같았고,
얼굴을 가득 채운 하얀 분장은 마음의 지도 같았다.
박수 소리와 환호는 폭우처럼 그를 뒤덮었지만,
그 소리가 사라진 밤, 거울 앞에 서면
그의 표정은 돌이 된 듯 굳었다.

거울 속 얼굴이 말을 걸었다.
"오늘은 몇 명의 눈물을 훔쳤지?"
피에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꺼풀 속에 감춘 슬픔이 소리 없이 대답했을 뿐.
거울 속의 그는, 무대 위에서
웃음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상인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얼굴은
거울 속 깊은 어둠 속에 갇혀 있었다.

그의 집은 거울 조각으로 만든 성이었다.
거울 조각마다 자신의 다른 얼굴을 담고 있었다.
웃는 얼굴, 우는 얼굴, 분노하는 얼굴,
그리고 아무 감정 없는 텅 빈 얼굴.
거울을 쓸어내릴 때마다
손끝에는 칼날 같은 진실이 스쳤다.
"누가 진짜인지 나도 모르겠어."
피에로는 거울에 대고 속삭였고,
거울은 갈라져 또 다른 조각을 만들었다.

어느 날, 그는 오래된 거울 조각에서
어린 소년의 얼굴을 보았다.
소년은 울고 있었다.
“왜 울고 있지?” 피에로가 물었다.
소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잃어버린 시간을 말해주었다.
가난했던 시절,
웃음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패였다.
그러나 웃음은 이내 그를 가두는 감옥이 되었다.

어느 날, 공연이 끝난 뒤
그는 거울의 나라로 들어갔다.
거울 속의 피에로 같은 사람들은
하나같이 자신을 향해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건 무엇이지?"
거울 속 피에로 같은 사람들이 물었다.
피에로는 울부짖었다.
"나는 진짜 내가 되고 싶어!"
그러나 그 대답은 거울 속으로 흩어지고,
대신 무수히 많은 거짓된 자신들이
그를 에워쌌다.

피에로는 자신의 분장을 벗기 시작했다.
하얀 분장이 흐릿해질수록
거울 속 피에로 같은 사람들도 점차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붉은 코를 벗어던졌을 때,
거울 속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마치 처음 태어난 듯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