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시간 속에서

이 얀 2025. 4. 30. 05:03

시간은 늘 앞질러 달리는 말과 같다.
아무리 고삐를 조여도,
그 맹렬한 속도를 늦출 수 없다.
사람들은 이 거칠고 빠른 생명을
길들일 수 있으리라 믿고,
시간의 갈기 위에 숫자를 새기고,
분초를 쪼개며 달린다.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살아야만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여긴다.

나는 한때,
그들과 같은 줄을 따라 달리려 애썼다.
시간은 돈이라 배웠고,
한 시간의 값어치를 계산해 내고,
분 단위로 계획표를 짜며
효율이란 이름의 신을 섬겼다.
그러나 어느 순간,
나는 문득 발밑의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무언가를 느꼈다.
세상은 시간을 모래주머니처럼
짊어지고 달리라 재촉했지만,
나는 점점 무거워졌다.
모래는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고,
나는 무거운 빈 껍데기만 남았다.

시간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 아니다.
어떤 이는 한 시간을 금화 한 닢으로 여긴다.
그러나 시간은
결코 저울에 올릴 수 없는 것임을,
나는 오래전 오후의 빛 속에서 배웠다.
바람결에 흔들리던 나뭇잎들,
강둑을 스치던 햇살의 결,
강물 위에 윤슬,
아무 목적 없이 흘러가던 그 순간들이,
내가 살아 있음을 가르쳐주었다.
그 기억들은 값을 매길 수 없다.
돈으로는 살 수도,
효율로는 측정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쪼개지 않기로 했다.
계획표를 불태우고,
손목시계를 풀어 책상 서랍에 던졌다.
대신,
시간을 흐르는 강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대신,
몸을 맡기기로 했다.
무언가를 끝내기 위해 애쓰는 대신,
그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웠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은 일을 해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었느냐였다.

사람들은 아직도 시간을 쪼개어 살고,
사치처럼 소비하며 산다.
"시간을 아끼자"라는 구호 아래,
자신을 쥐어짜고, 삶을 채근한다.
그리하여 어느새,
가장 소중한 것들을 놓치고 만다.
아이의 웃음소리, 노을 지는 하늘,
사랑하는 이와 나눈 짧은 눈 맞춤.
삶을 진정 빛나게 하는 것은
항상 효율 너머에 있다.

시간은 달리기를 강요하지만,
나는 걷기를 선택했다.
길가의 풀잎에 맺힌 이슬을 들여다보며,
무심히 떨어지는 꽃잎을 따라 눈길을 주며,
한 걸음 한 걸음
내 삶의 온도를 느끼기로 했다.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도,
나는 내 속도를 지킬 것이다.
아니, 지켜야만 한다.
삶은 속도전이 아니다.
삶은 숨결이고, 떨림이고, 느림의 춤이다.

마지막 순간에도,
나는 후회 없이 말하고 싶다.
"나는 시간을 소모하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사랑했다"고.
"나는 흐름에 쫓기지 않고,
흐름을 노래하며 살았다"고.

그래서 오늘도 나는,
초조함을 호주머니에 접어 넣고,
커피 한 잔을 천천히 식혀 마신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종을 울려도,
나는 조용히 미소 지을 것이다.
내 시간은 내 것이고,
나만의 걸음으로,
나만의 빛으로 흘러가고 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