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화가는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녔다.
허름한 회색 점퍼에 물감으로 얼룩진 청바지,
발뒤꿈치가 닳은 운동화.
그 모습은 마치 오래된 풍경처럼
한 자리에 고요히 머물러 있었다.
내가 처음 그를 만난 건
수년 전 문화센터의 드로잉 강좌에서였다.
초로의 나이였고, 말이 적은 사람이었다.
눈빛은 깊고 멀었으며,
그의 손끝은 언제나 조용히 움직였다.
수강생들은 대부분
취미로 미술을 배우던 사람들이었고,
나도 그중 하나였다.
소리 없이 연필을 따라 움직이며
그림자처럼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이 든 학생.
그는 인물화를 가르쳤지만,
정작 자신의 그림은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다.
한 번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선생님은 그림 그리실 땐
어떤 걸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그리세요?”
그는 책상에 있는 연필을 집으며 말했다.
“그리려는 게 아니라, 살아온 걸 꺼내려는 겁니다.”
그땐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강좌가 끝나던 마지막 날,
그는 조용히 내게 말했다.
“시간 되면 내 작업실 구경 올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작업실은
낡은 주택가의 반지하에 있었다.
습한 공기 속에 곰팡내가 섞여 있었고,
천장의 환풍기는 지친 숨결처럼 윙윙거렸다.
벽에는 액자 대신 캔버스 천들이
매달린 듯 걸려 있었고,
바닥 곳곳엔 말라붙은 물감 자국이
작은 섬처럼 흩어져 있었다.
그중에서 눈에 띈 그림 하나가 있었다.
80호짜리 대형 캔버스.
화면 대부분이 텅 비어 있고,
왼쪽 구석에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고 있었다.
뒷모습이었다.
기억처럼 흐릿하고 묵언처럼 고요했다.
왠지 쓸쓸했다.
“아버지예요.”
그가 말했다.
“중풍으로 오랫동안 누워 계시다 돌아가셨어요.
말도, 표정도 없던 분이었죠.
감정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시고 나서야
그분의 마음을 상상하게 되더군요.”
그래서 그는 늘, 누워만 지냈던 그분을 생각해
걷는 뒷모습만을 그린다고 했다.
그는 캔버스 앞에 걸터앉으며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나를 끝까지 못 알아봤어요.
내가 화가가 된 것도,
내 그림 한 장 본 적도 없죠.
요양병원에서 혼자 쓸쓸히 돌아가셨고요.”
그가 한 손으로 턱을 문질렀다.
손가락 마디가 닳아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죠.
돌아가신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분의 등을 그리고 있어요.
그 말 없는 등을, 매번 조금씩 다르게.”
그는 나직하게 웃었다.
“사람들은 내 그림이 너무 조용하대요.
하지만 난 알아요.
그 조용함 안에 아버지의 말 없는 눈빛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는걸.
나는 그걸 꺼내려고 그리는 거예요.”
그 순간, 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화면은 돌아서 있었지만,
그 노인은 말하고 있었다.
마치 “잘 지내냐?”라고,
“미안하다”라고,
“나 여기 있다”라고.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이 그림은 설명할 게 없어요.
다만, 그 앞에 섰을 때 내 마음이 무너집니다.
그게 진실이랍니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그림을 다르게 보게 됐다.
세상은 늘 화려한 걸 좋아한다.
강렬한 색감, 구체적인 메시지,
눈길을 끄는 구도.
하지만 그의 그림은 조용했다.
구석에 말없이 앉아 있는 사람들,
얼굴 없는 아이,
문득 고개를 돌린 노부인의 어깨…
나는 어느 순간부터,
그가 그리지 않은 여백을 보기 시작했다.
그 안에 남겨진 말들.
하지 못한 사과, 지나간 시간,
꺼내지 못한 사랑.
그의 그림 앞에서 사람들은 오래 멈췄다.
울기도 했다.
그는 유명한 화가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그의 그림 한 점엔
누군가의 인생 전체가 담겨 있다는걸.
그리고 이제는 알겠다.
그림은 그리는 게 아니라,
꺼내는 일이라는 걸.
그는 그저 말 없는 등을 꺼내 그려 왔을 뿐이다.
그러나 그 그림이, 말보다 더 많은 것을 전한다.
그 조용한 등 뒤에서,
나는 누군가의 진심을 듣는다.
아주 오래전부터, 말해지고 싶었던 진심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