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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상처로 빚은 예술

우울은 오래된 등불처럼 마음 안에서 깜박인다.
꺼지지 않은 채 기묘한 속삭임을 흘린다.
세상은 빛으로 가득한 듯 보이나,
그 속 깊고 짙은 어둠을 바라보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상처를 끌어안고,
예술의 문을 두드린다.

어째서 그들은 상처 속에서
진주를 캐내듯 이야기를 길어 올릴까.
피 흘리는 심장에서
핏방울보다 더 붉은 문장을 써 내려가는가.
그것은 불행이 단순히 재앙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은 그들의 내면에 작은 구멍을 만들고,
그 구멍으로 빛이 새어 들어와
언어라는 결정체를 빚어낸다.
슬픔이 없었다면,
예술은 결코 이렇게 황홀한
푸른 불꽃을 피우지 못했을 것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상처 입은 자들만이 가장 아름다운 빛을
쏟아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예술사 속 수많은 이름들,
그들은 대개 결핍과 슬픔 속에서 태어나
죽음 곁에서 꽃을 피웠다.
삶의 어두운 구석에서
누군가 머리를 묻고 흐느낄 때,
바로 그 자리에서 언어의 씨앗이 움튼다.
상처가 깊을수록,
예술은 투명한 칼날처럼 빛난다.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상처를 피할 수 없다는 뜻이고,
그 상처의 아픔이 클수록
영혼의 결정은 더욱 단단히 여문다.
비극적 생애를 살았던 작가들이 짊어진 슬픔은,
흘려보낼 수 있는 가벼운 불행이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으며 동시에 빛을 토해내는
기이한 운명이다.

어쩌면 이 세상은
본질적으로 무자비하고 잔혹하며,
그 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예술은
비명에 가까운 탄식의 변주곡이다.
그러나 그 비명은 결코 공허하지 않다.
그것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처럼 눈 부시며,
오랜 세월 다른 영혼에게 길을 알려준다.
고통 속에서 피어난 예술은 그래서 숭고하다.
상처받은 자들의 목소리가
불행의 바닥에서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잃어버린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한다.

니체는 말했다.
"우리가 예술을 가진 것은
진실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삶의 진실이란 얼마나 잔혹한가.
애써 누군가는 사랑을 노래하고
희망을 이야기하지만,
결국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는
건드리면 터져버릴 것 같은
슬픔의 낭떠러지가 자리한다.
그리고 그 끝없는 어둠을 직시할
용기를 가진 이들이야말로 예술가라 불린다.

시인 보들레르는 시궁창에서 별을 찾았고,
화가 반 고흐는 밤하늘의 빛나는 소용돌이 속에서
귀를 잘라 헌정해야만 했다.
카프카의 언어는
일생 동안 아버지의 거대한 그림자 속에서 떨던
그의 두려움의 잔해였다.
그들의 세계는
결코 축복받은 황금빛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병들고, 깨지고, 피 흘리는 육체가 지닌
불가해한 아름다움이었다.

나는 종종 묻는다.
왜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아픈 이들의 예술이,
이토록 우리의 심장을 흔드는가.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모두
비슷한 슬픔의 씨앗을
마음 어딘가에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피하지 않고, 직시하고,
부서진 조각들을 이어 붙여 다시 노래하려는
그들의 시도 속에서
우리는 예술의 숭고함을 본다.
그것은 삶의 지독한 부패와 비탄으로부터
피어난 단 하나의 영롱한 꽃이다.

슬픔은 우리를 허무로 몰아넣지만
동시에 우리를 인간답게 만든다.
그래서 예술은 늘 이 슬픔과 손을 맞잡는다.
그것은 인간의 불행을 미화하지 않는다.
오히려, 슬픔이 얼마나 끈질기고 날카로운지를
낱낱이 드러낸다.
그러나 그 드러냄이야말로,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이해하고,
언젠가 조금은 덜 아프게 살아갈
작은 빛을 찾는 유일한 길이다.

예술은 곧 인간 존재의 비극적 증거다.
불행을 부정하는 시대에조차,
나는 여전히 믿는다.
슬픔만이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든다고.
상처 입은 자들이야말로
이 불완전한 세계의 고통을 증언하고,
그 증언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고.

그러니 나는 오늘도 나의 글에게 묻는다.
"너는 왜 이토록 슬픈가?"
그러자 나의 글은,
어둠 속에서 나지막이 대답한다.
"나의 상처가 곧 너의 상처이기에,
나의 고통이 곧 너의 사랑이기에."

그 순간,
슬픔은 다시금 빛이 되어 내 가슴을 비춘다.
상처 위에 피어난 한 송이 어여쁜 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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