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

검은 잿빛의 슬픔

바람을 등에 업은 불씨로 산이 타들어 간다.
산허리를 물들이며,
나무는 비명을 지르듯 붉게 타올랐다.
어느새 마을까지 삼킨 그 불길은,
삶의 가장 따뜻한 공간마저
한 줌의 재로 바꾸었다.
숲은 쓰러졌고, 고요히 숨 쉬던 생명들은 멈췄다.
산과 집들이 희뿌연 재로 변해
하늘로 날아오르던 날
산이 울고 있었다.
나무가 울고, 바위가 울고,
그 곁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불이 삼킨 것은 풍경뿐이 아니라 기억이었고,
자연이 아니라 우리였다.
불은 단지 나무를 태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흔적, 아이의 웃음,
귀여운 강아지의 걸음,
밥 냄새와 웃음소리가 맴돌던 평범한 저녁을
한순간에 지워버린다.
타버린 것은 집이 아니라,
그 집에 담긴 추억과 시간,
그리고 다시 일어설 힘조차 잃은 이들의 미래다.
산불은 인간의 무심에서 태어나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가장 잔인하게 앗아간다.

산불을 조심해야 하는 것
그것은 단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을 지키는 일이며,
자연이 오랜 시간 가꿔온 평형을
무참히 깨지 않기 위함이다.
나무 하나가 자라는 데 걸리는 수많은 시간,
그 아래에서 피어난 생태계의 고요한 우주를
한 번의 실수로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산불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다.
그리고 그 상처는
인간의 무지와 무관심으로 시작된다.

불타버린 숲의 잔해,
한 줌 재로 변한 삶의 흔적,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노인의 등에서
나는 하나의 세계가 무너진 소리를 들었다.
그 뒷모습은
눈물보다 깊은 시의 행간이었다.
타인의 불행은 나와 절대 무관하지 않다.
공감은 사람됨의 시작이자,
사회가 사회일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다.
그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는 일은
곧 내 안의 인간성을 지켜내는 일이다.
불행은 선택하지 않지만,
그 불행을 마주하는 태도는 선택할 수 있다.

이재민들은 단지 집을 잃은 것이 아니다.
삶의 균형을 잃고,
내일의 예측 가능성을 잃었다.
이재민의 고통은 단지 ‘잃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버텨야 할 내일을
어떻게든 다시 세워야 하는 고독의 싸움이다.
우리는 그 고독에 함께 서 있어야 한다.
불탄 마을에 찾아온 봄처럼,
마른 가지에 피는 연둣빛 새순처럼,
작고 조심스러운 손길이
그들의 삶에 다시 빛을 틔울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순간 잿더미가 된 집 앞에서
그럼에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얼굴은
잿빛 속에서 가장 뜨겁게 빛났다.
그것은 절망을 견디는 인간의 용기이자,
사랑의 또 다른 형상이다.

창작은 때때로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다는
무력감에서 시작된다.
그러나 진심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슬픔의 파편을 껴안는 다정한 손이 된다.
예술은 말한다.
"나는 너를 보았다"고.
그리고 그 ‘봄’이 우리를 연결한다.
이해는 공감에서 시작되고, 공감은 변화를 낳는다.

재해를 피할 수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함께 일어설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은 여전히 흐리지만
잿빛 구름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은 슬픔 위에 피어난 연민이며,
다시 살아가겠다는 의지다.
그것은 불보다 뜨겁고,
재보다 무거운 사랑이었다.
이 감정이,
이 연민이야말로 세상을 다시 아름답게 만들
가장 부드럽고 단단한 힘이다.
그리고 우리는
따뜻한 그 마음으로 서로를 다시 품는다.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침표와 쉼표  (0) 2025.05.30
껍데기  (1) 2025.05.28
갓길  (1) 2025.05.26
한 송이 민들레로 산다는 것  (0) 2025.05.24
삶과 죽음  (0) 2025.0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