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열자마자 종이와 비닐의 냄새가
먼저 다가왔다.
베란다 한편, 며칠간 모은 택배 상자들이
무너질 듯 쌓여 있었다.
박스 테이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몇 번을 돌려 감은 자국,
완충제를 감싼 뽁뽁이의 거품처럼
부풀었다가 터진 자국들.
나는 손에 든 커터 칼로 조심스레 박스를 해체했다.
하나둘, 쌓여 있던 껍데기들이
숨을 내쉬듯 찌그러졌다.
어쩌면 나는 택배보다 택배를 싸고 있던
포장지를 더 오래 바라보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것들이 거쳐 온 긴 여정을 상상하곤 한다.
먼 도시의 물류창고, 밤을 새운 택배기사의 손,
새벽녘 우리 동네 골목길.
삶이 담기지도 않았던 껍데기들이
지나온 시간은 꽤 진중했다.
나는 그 무게를 종이 킬로그램 단위가 아닌,
사람의 마음 무게로 헤아려본다.
포장지는 단단하다.
그것은 약한 것을 위해 존재한다.
깨지기 쉬운 유리컵, 상하지 말아야 할 음식,
한 번 접촉에 흠집 날지도 모르는 전자기기.
인간은 연약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껍데기를 만든다.
그 안에 담긴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따라
포장지는 더 두터워진다.
그것은 마치 사랑의 깊이를 잴 수 없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쌓아가는 걱정의 층과도 닮아 있다.
한 번은 유독 두툼한 포장지 속에서
작은 카메라 플래시 하나를 꺼낸 적이 있다.
포장지 열 겹을 뜯는 동안,
나는 마치 무언가 신성한 것을 여는
제사장이라도 된 듯한 기분에 휩싸였다.
포장 상자는 열 배 정도 크기였지만
그 속의 물건은 허무할 정도로 작았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큰 물건이 담기지 않았지만,
철저히 보호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는 종종 내 삶을 껍데기로 감싼다.
타인의 시선 앞에선 웃음을,
실패 앞에선 괜찮다는 척을 껍데기 삼는다.
어느 날은 그 껍데기가 너무 무거워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하지만 그러고서도 또 하나의 포장지를 두르고,
내면을 포장한다.
왜일까.
들여다보면,
내 안의 알맹이는 생각보다 쉽게 상처 입고,
쉽게 흔들리는 존재라서일 것이다.
포장은 어쩌면 삶의 숨결을 보존하려는 몸짓이다.
깨지기 쉬운 일상을, 다치기 쉬운 마음을,
상처받기 쉬운 기억을 껴안기 위한 노력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아무것도 담기지 않은 포장지를 보며 오래 멈춰 선다. 그것은 이미 지나간 시간의 증거이자,
한때 중요한 것을 감싸고 있었던 증언이다.
마치 고요한 밤에 자식을 이불로 덮어주던
어머니의 손처럼.
내 방 구석엔 낡은 상자가 하나 있다.
누렇게 변색된 포장지 안에 오래된 편지,
색바랜 흑백사진,
젊은 시절 쓰던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 있다.
그 상자는 나의 성장기를 보호한 마지막 껍데기다.
나는 가끔 그 상자를 열어보며,
과거의 나를 다독인다.
아프고 여렸던 그 시간이 고스란히 눌어붙어 있다.
그리고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껍데기는 우리를 감싼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살아왔던 것이라고.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껍데기였다.
또는 누군가에게 보호받은 알맹이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포장지의 역할을 스스로 맡게 된다.
한 아이의, 한 사람의,
혹은 지나가는 누군가의 삶을 덮어주는 포장지.
그때 필요한 것은 단단함이 아니다.
쉽게 찢어지더라도 다정한 재질이면 된다.
외풍을 막고, 눈물을 감추고,
사랑을 품을 수 있으면 충분하다.
오늘도 또 한 번 택배가 도착했다.
박스를 열고 물건을 꺼낸 후,
나는 습관처럼 포장재를 해체하고 접는다.
쓰레기통과 재활용 통으로 가는 길에도,
나는 그것들을 한참 쳐다본다.
삶은 그렇게 껍데기 속에 흐르고 있다.
보호하고, 감싸고, 언젠가 떠나보내는 것으로.
그리고 그 빈 껍데기는,
어쩌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키워낸 가장 다정한 증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