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사랑이 뿌리를 가질 수 있다면,
그 사랑은 반드시 꽃으로 피어난다.
단지 한 줌의 흙, 보도 틈새의 균열,
차가운 콘크리트의 틈이더라도
거기 사랑이 닿는다면 꽃은 머뭇거리지 않는다.
마치 태초부터 그 자리를 정해둔 듯,
민들레는 주저 없이 생의 서막을 연다.
이름조차 수줍은 그 꽃은,
누구의 기대도 없이 찬 바람을 따라
이곳저곳 흘러든다.
마치 바람과 짜지 않은 약속을 나누고서,
조용히 어느 모퉁이에서 피어난다.
그러나 그 작음에서 울리는 진동은
오래된 시 한 줄이 가슴속에서 다시 낭송될 때의
은근하고도 깊은 울림하고 닮아있다.
누군가의 무심한 발길에 밟혀도
민들레는 탄식하지 않는다.
대신 흩날리는 홀씨가 되어
하늘을 건너고, 바람을 타고,
다른 생을 약속하러 떠난다.
이 작은, 날개 없는 새들은 하늘을 건너며
또 다른 생명을 예고한다.
민들레는 안다.
생의 본질은 계획이 아니라 놓아줌에 있다는 것을.
아이의 투명한 질문처럼 맑고,
노인의 고요한 수긍처럼 담백한 자세로,
제 안의 작고도 강한 태양을 은밀히 품는다.
민들레는 자신에게 주어진 순간에
인색하지 않다.
노란빛 전부를, 지나가는 발자국에도,
타오르는 아스팔트에도,
무심한 계절의 무게에도 기꺼이 흘려보낸다.
그것이 존재의 의무인 양, 말없이 환하다.
아름다움이란,
자신을 다 주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진실.
사람들은 그를 ‘잡초’라 부른다.
흔하고, 어디서든 자라고,
마음대로 번지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이 꽃은 진정한 자유의 은유다.
스스로 피어날 자리를 선택하고,
바람의 흐름에 따라 생을 옮겨가는 존재.
울타리도, 금지도 그의 삶을 가두지 못한다.
무계획은 어쩌면 무모처럼 보일 수 있으나,
민들레는 가장 순결한 생존의 뜻을 품고 있다.
들꽃 중 가장 겸허하며,
동시에 가장 단단한 이 존재.
밟히고 꺾이며 피어난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존엄을
포기하지 않는 용기다.
하얗게 부푼 씨앗을 감싼 씨방은,
작고 조용한 우주 같다.
준비된 이별처럼 침묵 속에 머물다,
바람의 손짓에 홀씨를 내어준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소멸’이라 부르겠지만,
나는 ‘비상’이라 부르고 싶다.
그 수많은 별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세계를 향해 고요히 떠나는 것이다.
문득, 우리는 왜 민들레처럼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말 없는 뿌리로 땅을 붙들고,
기대 없이 피어나며,
떠날 준비를 언제나 품은 채 살아가는 삶.
사랑도 그러했으면 좋겠다.
주는 순간엔 가장 눈부시고,
떠나는 순간엔 가장 순결한.
민들레는 언제나 낮은 곳에서 피어난다.
높은 줄기도, 화려한 꽃잎도 자랑하지 않는다.
대신 땅 가까이에서,
마치 사람의 눈을 맞추려는 듯
조심스레 피어난다.
그 겸손은 위장이 아니라, 본질이다.
무릎을 굽히면 비로소 만날 수 있고,
시선을 낮추면 가까워지는 진실.
민들레는 늘 그런 방식으로 존재를 드러낸다.
교회 마당의 틈, 폐가의 돌담 밑,
학교 화단의 귀퉁이에서도
민들레는 조용한 기쁨을 노란빛으로 남기고 간다. 그곳에선 시간이 느려지고,
누구든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어떤 날은 나도 민들레가 되고 싶다.
다정한 침묵으로 세상을 바라보다가,
바람의 품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는 존재.
거창한 사명도 아닌,
하루의 햇살을 품는 것만으로 충분한 생.
누군가의 눈길 안에서
잠시 반짝였다가 사라져도,
내 씨앗 하나가
또 다른 대지를 향해 꿈꾼다면.
그 하나로도 족하다.
문학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드러나려 하지 않되,
그 자리에 있음만으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무너진 숨을 가다듬게 하는 문장.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언젠가 그 한 줄이 가슴에 뿌리내리고,
홀씨처럼 날아가
다른 마음에 꽃으로 피어난다면.
길을 걷다 문득 민들레를 만난다.
그 노란 중심에서 문장이 피어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아도, 그는 분명히 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꽃 앞에서 배운다.
삶은 고요할수록 더욱 깊어진다는 것을.
사라짐조차 아름답게 흩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한 송이 민들레로 산다는 것,
그것은 세상을 조용히 안아주는 일이다.
민들레는 아무 말도 없지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흔하지만 찬란한,
작지만, 영원한 존재의 방식.
그리고 나도, 마음 한구석에서
조용히 꽃을 피운다.
하늘보다 낮은 곳에서,
그러나 누구보다 높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