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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낯선 길목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이름은 아니었지만,
낯익은 공기 속에 스미는 숨결처럼
그 소리는 내 어깨를 스쳤다.

어떤 날은 내가 나인지 의심스러운 시간,
내 그림자가 나보다 먼저 날아오르고
햇살은 내 안에 닿지 못한 채
창문 너머에서만 빛난다.

꿈은 지워진 지 오래다.
기억의 뒤편에 숨은 희미한 환영처럼,
내 손끝에 닿지 못하는 나날들이
휘몰아치는 강물처럼 흘러간다.

삶이란 원래 이렇게 무뎌지는 것일까.
희망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가벼워진 마음이
자신을 스스로 속이는 법을 배운 날들.

그러나,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순간
나는 잠시 멈춰 선다.
그 흔들림 속에서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를 찾는다.

고독은 늘 나를 기다리는 친구다.
우리는 침묵 속에서 대화를 나눈다.
그 속삭임이 때로는 노래처럼,
때로는 칼날처럼 내 가슴을 찌른다.

삶은 정답이 없는 질문지 같다.
나는 자주 틀린 답을 적고,
때로는 아무것도 적지 않은 채
다음 장을 넘긴다.

그러나 어둠이 깊어질수록
별은 더욱 빛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낯선 길목에서,
나는 그 별을 기다린다.

잃은 것들에 대한 미련은 접어두고
삶에 흐름에 몸을 맡긴다.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어쩌면 나를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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