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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젊은 날의 나는 늘 막차에 매달려 살았다.
회사 야근이 길어지거나,
동료들과의 술자리가 길어질 때면,
허둥지둥 달려가 겨우 마지막 칸에 몸을 밀어 넣었다. 막차 안에는 나와 닮은 얼굴들이 앉아 있었다.
지친 어깨, 무심한 시선,
창문 너머 어둠 속으로 스쳐 가는 네온사인의 잔영.
그 표정 속에는 하루를 무사히 마친 안도보다,
내일도 반복될 피로와
불확실함이 먼저 깃들어 있었다.
누군가는 멍하니 창밖 어둠을 따라갔고,
누군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조용히 숨을 골랐다.
이 늦은 시각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이유는 제각각이겠지만, 막차라는 공간만큼은
우리를 같은 부류로 묶어두었다.

막차를 놓친 밤은 유난히 길었다.
어느 해 겨울,
출장지에서 늦게까지 회의가 이어졌다.
시계를 보니 막차 시간까지 10분.
나는 짐을 들고, 골목길을 달리고,
숨을 헐떡이며 역으로 향했다.
그러나 플랫폼에 닿았을 때,
전광판의 불빛은 이미 ‘운행 종료’를 알리고 있었다.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마지막 불빛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오늘 하루의 끝과 내일로 이어지는 다리를
태워 보내는 것 같았다.

그날 나는 알았다.
막차를 탄다는 건 단순히 집에 가는 일이 아니었다.
삶의 자리를 지키는 일이었다.
목적지가 있다는 것,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 것이었다.
막차를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아직 ‘돌아가야 할 이유’를 가진
사람이라는 증거였다.

그 순간 느낀 것은 단순한 불편이 아니었다.
마치 세상 전체가 나를 남겨두고 떠난 듯한 고립감, 돌아가야 할 자리에서 밀려난 듯한 서러움이었다. 길모퉁이 수은등 아래 홀로 서 있자,
차가운 공기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
그 밤, 나는 깨달았다.
막차를 놓친다는 것은,
때로 기회를 놓친다는 것과 닮아 있다.

막차는 언제나 두 얼굴을 하고 있다.
한쪽은 종착의 얼굴, 다른 한쪽은 시작의 얼굴이다. 오늘의 끝이자 내일의 문턱.
막차가 끝을 의미하는 건 잠시뿐이다.
동이 트면 첫차가 되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온다.
막차를 놓친 발걸음이 절망이 되는 건,
그것이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믿을 때뿐이다.

하지만 삶의 막차는 끝이 아니다.
밤과 새벽이 맞닿는 시간처럼,
막차가 떠난 자리에는 첫차가 올 준비가 되어 있다. 오늘의 마지막이 내일의 시작이 되는 순환,
그것이 삶의 리듬이었다.
봄이 가면 여름이 오고, 해가 지면 다시 떠오르듯이,
놓친 막차는 단지 방향을 바꾼 시간일 뿐,
인생의 종착역이 아니었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돌아보면, 내 젊은 시절은 늘 막차와 함께였다.
세상과 어울리는 법은 서툴러서, 때로는 두려워서,
늘 조금 늦게 출발하곤 했다.
그러나 막차는 나를 끝까지 기다려 주었고,
그 늦은 발걸음 속에서도
나는 나름의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막차를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아직 돌아갈 곳이 있다는 증거다.
그곳이 화려한 궁전이든,
허름하고 낡은 집이든 상관없다.
나를 맞이해줄 불빛이 있다는 것,
그 불빛을 향해 달려가는 이유가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삶은 이어진다.

이제 나는 막차를 탈 일이 드물어졌다.
은퇴한 지금은 자가용으로 돌아오지만,
가끔 창밖 어둠 속을 스치는 버스를 보면
가슴 한구석이 저릿하다.
그 시절, 피로와 불안 속에서도
막차를 향해 달려가던 나.
놓치면 안 된다고 믿었던 기회들,
잡기 위해 땀을 흘렸던 순간들.
그 모든 시간이 모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막차는 ‘마지막’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실은 ‘다음’을 품고 있다.
놓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를 수 있는 준비의 시간일 뿐이다.
중요한 건, 그 시간에도
여전히 희망을 쥐고 있는 마음이다.

막차는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의 자리다.
삶이 나를 늦게 보내더라도,
나는 언젠가 도착할 것이다.
그것이 삶의 순환이고,
내가 오늘도 버텨야 하는 이유다.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음악듣기 / 정태춘, 박은옥 -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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