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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조개의 눈물

바다는 단 한 순간도 잠들지 않는다.
그 파도는 지구의 맥박처럼 끊임없이 숨 쉬며,
사라진 웃음과 남겨진 울음을 실어 나른다.
그 안에서 생명은 고요하게,
그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깊고 짠 어둠을 뚫고 살아간다.

조개는 세상의 소음에 등을 돌린 듯
단단한 껍질을 닫고 침묵한다.
그러나 그 내부에서는 날마다
날카로운 모래알이 살갗을 파고들고,
그 고통을 본능처럼 감싸안으며
조금씩, 아주 조금씩 진주를 빚어낸다.
그것은 상처를 품어 빛으로 승화시키는 일.
바다의 가장 낮은 곳에서,
조개는 고통을 철학으로 반추하는 작은 현자다.

모래 한 알이 들어오는 순간,
그의 세계는 바뀐다.
그 작디작은 침입자가
살을 찢고, 기억을 파고들고,
마침내 존재의 일부가 된다.
처음엔 저릿한 짜증이었고,
곧 둔중한 통증이었으며,
결국은 빛나는 침묵으로 거듭난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도 원치 않았던 생의 껍질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예상치 못한 이물질을 맞이한다.
그것은 우연히 스쳐 간 말 한마디일 수도,
되돌릴 수 없는 이별일 수도,
혹은 지나쳐버린 시간일 수도 있다.
그것들은 쉽게 토해낼 수 없고,
손쉽게 꺼내 보여줄 수도 없다.
우리는 그저 묵묵히 감싸고,
체온으로 덮고,
지나간 고통을 빛나는 무엇으로 바꾸며 살아간다.

누군가는 그 진주를 장식품으로 삼는다.
고통의 서사를 모른 채,
그 아름다움만을 소비한다.
하지만 진주는 결코 우연히 태어나지 않는다.
그것은 침묵과 인내의 축적이며,
눈물과 체온으로 갈무리된 하나의 생애다.
조개가 그러하듯,
우리도 마음속 깊은 바닥에서
비명을 삼키며 살아간다.
말하지 못한 사랑,
짊어진 책임,
설명할 수 없는 상처는
모두 진주가 되기 위한 시간의 결정이다.

사람도 결국 하나의 바다 생명이다.
스쳐 지나간 하루가 어딘가 꺼끌꺼끌하게 남았다면,
그건 어쩌면,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모래알 하나가 박혔기 때문일지 모른다.
사랑, 상실, 후회, 기대, 분노…
삶은 그런 것들을 흘려보내며 성긴 진주를 만든다.
우리는 그 감정들을 뱉어낼 수도 없고,
그저 모른 척 품기만도 어렵다.
그래서 조개처럼, 체액을 흘려
그 상처를 둥글게 감싸안는다.
시간은 그것을 단단하게 하고,
고통은 그것에 광채를 부여한다.

때로는 감정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가라앉혀 두었던 슬픔과 미처 전하지 못한 말들이
파도처럼 겹겹이 가슴을 덮친다.
그럴 때면 우리는 모래 속으로 파고든다.
낯설고 불편한 그곳,
그러나 세상의 가장 낮은 곳에서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는 공간.
정제되지 않은 감정도,
뒤엉킨 생각도,
그곳에서는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마치 삶이라는 해감을 토해낸 뒤,
다시 길을 찾는 준비를 하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조개다.
침묵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
상처를 끌어안고, 기억을 견디며,
때로는 진주 하나로 자신을 증명하는 생.
그 눈물은 빛을 품고 있고,
그 침묵은 언어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삶의 끝자락에 이르면,
우리는 마음의 바다에
작은 빛들을 흩뿌리며 떠난다.
그것이 인간의 위엄이며, 조용한 승리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겐 치명적인 바람이 된다.
삶은 그 반복된 해감을 견디는 여정이다.
쉽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쓰다듬고,
완전히 씻기지 않는 감정을 끌어안으며,
우리는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그 마지막에,
우리가 남기는 진주는
말하지 못한 고통의 시이자,
살아낸 존재의 증표이며,
또 다른 생에 전해질, 한 줄기 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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