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 감긴 시간이 마치 한 겹의 나이테처럼
의미를 흘려보낼 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사라짐은 닿지 못한 자리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비가 오는 날이면 나는 물웅덩이를 마주한다.
너의 이름이 파문처럼 번질 때
그 기억의 중심에는
언제나 부재의 색이 자리했다.
너는 나의 반대편에 있었다.
빛과 어둠의 경계, 무지개의 그늘진 이음새에서
서로를 모르면서도 닮아가는,
모호한 선율로 울리는 경계.
어느 날, 물웅덩이에 비친 잿빛 하늘이
너의 얼굴을 닮아 있었다.
흩어진 빗방울 속에서 나는 네 이름을 접었다.
네가 있는 하늘은 몇 색으로 물들었을까?
잎사귀 하나,
떨어지지 못한 채 바람 속에 걸려 있다.
그 무게는 얼마나 될까, 사라질 순간을 담고도
휘어지지 않는 그 가지의 망설임.
기억은 늘 음표처럼 남아
침묵 속에서도 선율이 된다.
이제 나의 언어는 너의 부재로 채워지고,
나는 종종 그 공백에 눈물을 흘린다.
안녕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이것은 끝의 이름이 아닌
같은 하늘 다른 쪽에서 한 번 더 비가 내리길
기다리는 무지개의 한 단면일 테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