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풀어진 하늘이 뜨거웠던 무렵,
그가 다가왔다.
얼굴을 마주 대했으나,
내 속에 묻어둔 옛이야기가
낱말처럼 입술에 걸렸다.
시간이 지나자, 순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가 지나온 길은 내가 헤맸던 숲과 같았고
그가 남긴 발자국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
그는 고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 뒤에는
너무 많은 것을 감춘 사람이었고
나는 그걸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눈동자 너머, 무너지려는 집과
불 꺼진 창문과 숲에 덮인 길.
그가 내민 손은 따뜻했으나
닿으면 모두 얼어버릴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을 부르려 했으나
내 혀는 언어의 모서리에 걸렸고
내 목은 침묵으로 목이 메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마치 두 개의 거울이 마주 선 듯.
겉모습은 다르지만,
그 안에 박힌 균열의 무늬가 닮아 있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상처가 상처를 알아본다는 걸
그 순간에 깨달았다.
그와 나는 말없이 걸었다.
그의 그림자가 내 그림자와 겹치고
빛이 꺼져갈 때, 그도 사라졌다.
그러나 나는 알았다.
그가 남긴 안타까운 흔적은,
내 심장 가장 깊은 곳에 뿌리내렸음을.
우리는 서로를 지나쳤으나
결코 지나가지 못했다.
이런 것이 아마 인연이라 불리는 게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