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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짝이는 말

이 얀 2025. 2. 2. 01:03

어릴 적 나는 말하는 걸 부끄러워하였다.
꼭 말해야 할 때도 단어들이 자꾸만 엉켜 버렸다.
선생님의 시선이 내게 머무는 순간에는,
내 안의 문장은 입술을 넘지 못하고
뒤엉킨 채 가라앉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침묵에 익숙해졌다.
차라리 말하지 않는 것이 편했다.

그러나 내 안의 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을 삼킬수록,
단어들은 가슴 속에서 더 선명하게 빛났다.
마치 깊은 바닷속에서 빛나는 작은 물고기들처럼.
그들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가
다시 심장으로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나는 그런 말들을 품고, 조용한 아이로 자랐다.

성인이 된 나는 한때 말하는 직업도 가졌었지만
직업일 뿐 여전히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빠르게 논리를 쏟아낼 때,
나는 한 박자 늦게 대답한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말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가장 빛나는 말은 때로 가장 늦게 도착한다는 것을.

어릴 적 가슴속에서 빛나던 단어들을 떠올렸다.
그것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단단히 다듬어져
반짝이는 말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제야 안다.
말은 빨리 뱉어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깊이 품어 반짝이게 해야 하는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