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아닌 그늘을 바라본다
뿌리도 줄기도 없는 그곳에
왜 내가 앉아 있는지 묻는다.
그늘은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빛을 비켜 앉고 어둠의 자락을 펼친다.
빛이 그늘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늘이 빛을 품고 있는 거라면
나는 그 경계를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구름은 떠돌다 모여 비가 된다.
비는 땅에 스며들어, 또 다른 그늘을 만든다.
그곳엔 뿌리가 없지만 자라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열매가 열린다.
누군가는 그것을 고요라 부르고,
누군가는 그것을 기다림이라 부른다.
그늘은 어둠의 무게를 견디는 자들이다.
빛이 강할수록 그늘도 짙어진다.
그늘 속엔 이야기가 있다.
말해지지 않은 단어들이 잔잔히 앉아
자리를 내준다.
그늘에 앉아 있는 내가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내가 그늘 밖을 바라본다.
빛과 어둠 사이,
그 얇은 경계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나는 묻는다.
누구의 그늘인가.
누구의 빛인가.
그리고 누구의 열매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