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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의 끝에서

그는 늘 빛을 쫓았다.
어둠 속에서 자신을 감춘 채,
어딘가에 있을 법한 온기를 향해
끝없이 팔을 뻗었다.
평평한 땅이 아니고
날카롭고 바스락거리는 돌벽,
불모의 길을 택한 것도
어쩌면 희미한 희망의 방향이었을까.

차가운 빗줄기가 피부를 헤집고,
맹렬한 태양이 줄기를 태울 때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올라야만 했다.
그것은 마치 영원한 약속 같았다.

푸르른 허공에 닿는 순간,
그는 모든 것을 가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끝에 다다른 순간 알았다.
머리 위로,
손에 닿지 않는 하늘은 텅 비어 있었고,
구름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으며,
바람은 이름 모를 이야기만 속삭일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찢긴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 얽히고설킨 그리움을
저버린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제 돌아갈 길은 없었으니까.
그는 기어이 제 무게에 휘청였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아래,
초록빛 잎들이 잿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그 잎사귀들은 마치
새로운 생명을 꿈꾸는 씨앗 같았다.
하지만 그는 안다.
그곳엔 이제
그의 뿌리마저 닿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 그는 한 가지를 묻는다.
"나는 왜 올랐는가?"

바람은 대답하지 않는다.
구름은 흩어질 뿐이다.
그러나 그는 서서히 알게 된다.
어쩌면,
올라야만 하는 게 시작일 뿐이었다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흐르듯 내려가는 법을 배우는 것도
진정한 삶의 여정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