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해바라기

이 얀 2025. 7. 4. 03:25

해바라기

해가 떠오르면 어김없이 얼굴을 돌려
따스한 빛을 쫓는 꽃.
태백 어느 마을에서 마주한 해바라기는
태양의 화신처럼 서 있었다.
짙푸른 여름 하늘 아래,
금빛 꽃잎을 활짝 펼쳐 환희에 찬 얼굴을 하고.
햇살을 온몸으로 들이마시며,
마치 한순간도 망설임 없이
살아가겠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해바라기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자리에 뿌리내린 채 오직 하늘을 향해
몸을 곧추세우는 존재.
그것은 단순한 꽃이 아니라,
한 생이었고, 한 의지였으며, 한 운명이었다.
고개를 들고 해를 마주하는 동안,
그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마치, 오로지 앞으로만 내달리는 삶처럼.

그러나 해바라기는 태양을 쫓는 동안,
조용히 자신을 소진하고 있었다.
태양을 닮기 위해, 태양이 되기 위해,
그는 속을 비우고 또 비웠다.
꽃잎이 하나둘 바람에 스러지고,
이파리가 고개를 떨구어도
해바라기는 마지막 순간까지
태양을 향해 선 채로 있었다.
뜨거운 열정이 때론 희생을 동반하듯,
그는 스스로를 깎아내며
하나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해바라기가 꽃을 피우고,
다시 그 꽃이 시드는 과정은
한 사람의 삶과도 닮아 있었다.
젊은 시절엔 해를 향해 달리던 날들이 있었다.
무엇이든 가능하리라 믿던 시절.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빛은 점점 저 멀리 사라지고
서서히 자신의 그림자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빛을 쫒는다는 것은
곧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는 일이란 것을.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난 자리,
해바라기는 씨앗을 품은 채 조용히 땅을 바라본다.
언젠가 또다시 태양을 향해 자라날 다음 세대를 위해.
꽃잎이 피고, 이내 사그라지는 동안
해바라기는 내면을 단단하게 만든다.
씨앗을 품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준다.
잎은 시들고, 줄기는 무거운 머리를 견디지 못해
고개를 숙인다.

해바라기는 끝내 스스로를 남김없이 태우지만,
그 흔적 속에서 새로운 생명이 움튼다.
아름다움이 저물어 가는 동안,
새로운 생명을 키우기 위해 자신을 불태운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희생 속에서 완성된다.
그 순간, 해바라기의 참모습을 보았다.
빛을 따라 달리던 그 모든 순간이
결국, 누군가를 위해 남겨지는
씨앗을 익히는 과정이었음을.

삶은 태양을 쫓는 길이지만,
동시에 새로운 생을 위한 길이기도 하다.
오늘 해바라기를 바라본다.
그 금빛 불꽃이 내 안에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는가를 확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