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별 없는 바다를 사랑하다
멀리 있는 것들이 나를 불렀다.
흐르지 못한 것들이 나를 붙잡았다.
오지 못하는 것들에 나는 귀를 기울였다.
사랑은 오지 않는 것들로부터 시작되었다.
물결은 닿지 못하는 것들을 향해 매번 출렁인다.
닿을 수 없다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물은 끝끝내 흐른다.
나는 그 물가에 오래 앉아 있었다.
손에 닿지 않는 바다를, 부르지 못하는 이름을,
그 물줄기는 내게서 멀어진
‘너’에 대한 바다의 회답처럼
매번 다른 소리로 속삭였다.
개천은 바다를 모르지만,
바다는 개천을 알고 있다.
그 말 없는 연모처럼,
밀물은 깊은 숨을 들이마셔
이 물가까지 와 닿는다.
이름도 없이 무명처럼 흐르다,
끝내 바다로 닿는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바다의 그림자가,
이 작고 얕은 물줄기에 스며 있다.
갯벌도 없고 파도도 없는 이 내륙의 물길에,
바다의 냄새가 어렴풋이 감돌 때가 있다.
그것은 실상보다 기억에 가까운,
사라진 기척의 냄새였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이 내륙의 얕은 개천은,
해안의 몸짓을 알 길 없으면서도
매번 몸을 낮춰 그 손짓을 받아낸다.
바다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바람과 소금기와 불현듯 일렁이는 수면으로
그 기별을 전한다.
그 조용한 사모(思慕) 속에, 나는 너를 생각한다.
나는 너에게 온전히 닿은 적이 없지만,
마음의 밀물은 언제나 너를 향해 밀려들었다.
내가 머무는 이 물가에선,
갈대들이 바람에 자주 몸을 기울인다.
그 구부러짐은 복종이 아니라 기다림이다.
뿌리 뽑힐 만큼 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선다.
사랑은 그런 것 아닐까.
뽑히지 않으면서 꺾이고,
무너지지 않으면서 낮아지는 것.
너에게 가닿을 수 없는 이 거리에서,
나는 스스로를 갈대처럼 휘게 한다.
낮은 물소리에 귀를 대며,
혹시 네가 나를 부르는
기척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 온 몸을 곤두세운다.
닿을 수 없는 바다를 기억하며
한 치 한 치 밀려오는 조류처럼,
‘너’는 내게 언제나 가닿지 않았다.
물결은 이따금 감각의 틈을 타
내 마음 안쪽까지 스며들지만,
끝끝내 만져지지 않는다.
이 물줄기엔 바다의 약속이 깃들어 있고,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기에 더 깊고 또 아리다.
너의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갈 수 없었다.
네 깊은 바다는 내게 끝내 허락되지 않았다.
너는 나에게 늘 이인칭이었으나,
때때로 삼인칭처럼 멀게 느껴졌다.
부르면 대답하지 않는 거리,
돌아보지 않는 그림자,
내가 바라보는 모든 방향에 있으나
그 어디에도 없는 존재.
너는 사라진 메아리였다.
나는 내 안에서 소리쳤고, 내 안에서만 들렸다.
그 침묵의 경계에 다다를 때마다,
내 사랑은 말라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말라간 자리에 또 다른 물길이 솟았다.
사랑은 그렇게 번역되지 않는 감정,
이해되지 않는 언어로 계속 흘렀다.
밤이면, 나는 물가로 돌아왔다.
썰물이 지나간 자리에 갯벌이 드러나고,
그 질척한 땅 위를 새들이 뒤적였다.
빈껍데기처럼 남은 조개무더기 사이로,
한 줄기 바람이 지난다.
그 바람에 나는 네 이름을 태운다.
닿지 못할 이름, 부르지 못할 사랑.
언어는 이미 퇴색했고,
나는 침묵으로 말해야만 했다.
물러나는 물처럼, 나는 너에게서 멀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밀려드는 사랑처럼
나는 다시 돌아간다.
끝없이 반복되는 이 흐름 안에서,
나는 비로소 사랑의 본질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사랑은 닿는 것이 아니라,
닿고자 하는 몸짓이다.
그것이 닿지 않을 때조차 계속되는 고백이다.
멈추지 않는 흐름이다.
내 사랑은 바다의 기별이었다.
아주 멀리서 밀려와,
작은 개천의 모퉁이를 적시고 스러지는 물결.
바다는 모른다.
내가 이 물가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앓았는지.
그러나 나는 안다.
바다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 물가에도,
바다는 분명히 와 닿았다고.
그리고 너 역시 내게 열어주지 않았지만,
분명히 내 안을 지나간 바람이었다고.
사랑이란 본디 혼잣말에 가깝다.
바다는 하천에게 아무 기별을 보내지 않는다.
그러나 하천은 매일같이 바다를 향해 흐른다.
소금기 하나 없이도,
파도 한 줄 없이도, 그저 흐른다.
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개천 앞에서 오래도록 물을 들여다보았다.
깊지도, 맑지도 않은 그 물 속에,
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흐르는 것이 사랑이라면,
멈추는 것도 사랑이었다.
오늘도 나는 이 마른 물가에서,
기별 없는 바다를 사랑한다.
아무런 약속도, 목소리도, 손길도 없이,
오직 흐르는 마음만으로.
언젠가 그 마음이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나는 모른다.
다만 흐를 뿐이다.
사랑은 결국,
도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