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디의 시간
이른 아침, 안개가 대숲을 덮고 있었다.
하늘빛은 흐리고,
초록 숲은 습기를 머금어 더욱 짙어졌다.
눈을 감으면 들려오는 건 바람의 발소리와
댓잎들이 스치는 미묘한 속삭임.
어쩌면, 나지막한 위로의 말일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생의 본질에 가까운 어떤 숨결.
나는 대숲 깊숙이 걸어 들어갔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고요 속에 우뚝 선 대나무들이 있었다.
세상을 향해 고개를 젖히지도,
고개를 떨구지도 않은 채,
그저 곧게.
바람에 휘청이되 부러지지 않는 선들.
그것은 어떤 품격이었다.
겉은 유연하지만 속은 단단한, 삶의 철학.
대나무는 나무와 풀의 경계에 선 존재라 했다.
나무처럼 서 있으면서도, 풀처럼 빠르게 자라고,
나이테조차 지니지 않는다.
시간의 흔적이 없어 보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인생처럼 꾹꾹 눌러 찍은 마디가 있다.
그 마디마다 기억이 앉아 있고,
고통이 담겨 있다.
그 마디들을 바라보다,
문득 내 삶의 골짜기들이 떠올랐다.
사람을 잃고, 꿈이 꺾이고,
믿음마저 저버렸던 날들.
나는 그것을 실패라 불렀고, 패배라 여겼다.
그러나 지금 대나무의 마디 앞에 서니
생각이 달라졌다.
마디는 꺾임이 아니라 멈춤이었고,
멈춤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쉼이었다.
삶이 나를 꺾으려 했던 순간들조차,
실은 더 높이 오르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한때 누구보다 높이 오르고 싶었다.
더 많은 것을 이루고, 더 큰 꿈을 품고자 했다.
그러나 내 안의 허영은 첫 번째 바람에 쓰러졌고,
두 번째 바람에는 뿌리마저 흔들렸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였는지를 깨달은 건
고통의 마디를 지나서였다.
그제야 보였다.
대숲 아래 단단히 얽힌 뿌리들.
서로의 숨결을 나누며
흙을 움켜쥔 채 살아가는 생명들.
가장 낮은 곳에 있어야 가장 높이 자랄 수 있다.
뿌리는 빛을 바라보지 않는다.
오직 어둠 속에서 버티며 생의 물줄기를 찾아낸다.
그 절박함이 결국 줄기를 만들고, 마디를 세우며,
하늘로 가지를 뻗게 한다.
그러니 나 역시, 어둠 속에서 자라났다면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삶이 내게 준 기회였다.
대숲은 그 어떤 군중보다도
조용한 합창을 들려준다.
각각의 대나무는 홀로 서 있지만,
결코 고립되지 않는다.
서로 기대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숲을 이룬다.
그것이 진정한 공동체일지도 모른다.
경쟁도 억지도 없이,
제자리에서 제 속도로 성장하는 삶.
나도 대나무처럼 살고 싶다.
남김없이 살다가, 조용히 꽃을 피우고,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
대숲의 꽃은 일생에 단 한 번,
모든 생을 소진한 후에야 핀다.
그것은 삶이 아닌 죽음의 증표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 단 한 번의 꽃을 동경하게 된다.
삶을 다 살고도 피워내는 마지막 기적.
나는 대나무를 닮고 싶다.
쉽게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는,
가늘지만 깊이 뿌리내린,
상처를 마디로 남기며 조금씩 위로 자라나는 모습.
외롭지만 고요한, 서늘하지만 다정한 존재.
숲을 나서며 뒤돌아보았다.
수많은 대나무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책망도 연민도 아닌,
그저 한 인간의 여정을 지켜본
깊은 침묵이었다.
삶은 아마도 그 침묵을 이해하는 여정일 것이다.
오늘 하루, 나는 조금 더 자라난 것 같다.
작지만 뚜렷한 하나의 마디가
내 안에 생겨난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