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문
물 위에 조용히 돌 하나를 떨어뜨리면,
파문이 번진다.
동그란 물결은 고요를 깨뜨리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레 퍼져 나가다 이내 사라진다.
햇살 아래 반짝이며 멀어져가는 그 잔물결은
어느 순간 흔적 없이 물속에 스며들고,
그렇게 자연은 자신의 흔적마저도 부드럽게 지운다.
그러나 인간 사회의 파문은 다르다.
특히 말에서 비롯된 파문은,
물결이 아니라 칼날이 된다.
그것은 부드럽게 다가와 마음을 꿰뚫고,
믿음을 갈라놓고, 공동체를 파괴한다.
물 위의 파문은 빛을 품지만,
말의 파문은 때로 어둠을 잉태한다.
진실과 거짓, 정의와 욕망이 섞인 그 어휘의 물결은, 사라지지 않고 앙금으로 남는다.
말은 울림이다. 그리고 그 울림은,
어떤 이는 떨게 하고, 어떤 이는 따르게 만든다.
말은 물보다 무겁다.
그것은 보이지 않지만, 들리는 순간 무게를 갖는다.
그 무게는 때로 한 사람의 인생을 무너뜨리고,
한 사회의 윤리를 흔들고,
심지어 한 세계의 지도를 바꾸기도 한다.
히틀러는 말로 세계를 흔들었다.
그의 연설은 단순한 웅변이 아니었다.
그것은 증오의 씨앗이었고, 광기의 설계도였다.
그가 뱉은 말은 군중의 마음을 중독시켰고,
그 중독은 무고한 이들을 가스실로 몰아넣었다.
그의 말은 파문이 아니라, 쓰나미였다.
그리고 그 쓰나미는 유럽 전역을 핏빛으로 물들였다.
우리는 그 참혹한 역사를
마치 과거의 일인 양 외면하지만,
그 파문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잔물결로 이어지고 있다.
정치는 언어로 세상을 짓는다.
그러나 세상은 말보다 더 무거운
진실로 이루어져 있다.
진영을 나누는 말, 편을 가르는 말,
사람을 상품처럼 포장하는 말들이 넘쳐나는 오늘날, 우리는 그 말의 파문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누군가는 "국민의 뜻"이라 하고,
또 다른 이는 "민심"을 말하지만,
그 뜻과 민심은 과연 누구의 목소리인가.
말의 파문은 사람들의 생각을 흔들고,
감정을 부추기며, 가슴에 잔상처럼 남는다.
그것은 쉽게 씻기지 않는 상흔이다.
우리는 이제, 타락한 언어가 만드는
파문의 시대에 살고 있다.
가짜 뉴스, 선정적 발언,
감정의 버튼을 누르는 선동의 언어들.
그 속에서 우리는 진실을 찾기보다,
편리한 믿음을 택한다.
그러나 파문은 진실을 외면한 곳에서
가장 깊게 패인다.
진실은 불편하다. 진실은 시간이 걸린다.
진실은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유일하게,
파문을 가라앉히는 힘을 지닌다.
우리는 다시, 언어의 윤리를 묻지 않으면 안 된다.
말이 향하는 방향이 진실인지, 욕망인지,
혹은 공포인지 질문해야 한다.
특히 정치의 말은, 듣는 이가 많고,
믿는 이가 많기에 더욱 무겁다.
말 한마디가 수많은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한 공약 이상의 것이며,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희망을 세울 수도 있다.
진실은 조용하다.
그것은 언제나 파문의 중심에 있지만,
가장 눈에 띄지 않는다.
거짓은 소란스럽다.
그것은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SNS를 떠돈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말의 파문이 아니라,
그 파문이 일으킨 결과다.
그리고 그 결과는 수없이 많은 생의 균열 속에,
증오와 상처로 남는다.
우리는 물 위에 던진 돌처럼,
하나의 말이 어떤 파문을 남길지 생각해야 한다.
말이란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미래를 향한 예언이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물어야 한다.
이 말은 공익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나를 위한 것인가.
이 말은 다리를 놓는가,
아니면 벽을 세우는가.
이 말은 진실을 드러내는가,
아니면 진실을 감추는가.
파문은 되돌릴 수 없다.
그러니 우리는 파문의 진원지에서부터
더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곳에 진실이 있다면,
비로소 말은 무기가 아닌 등불이 된다.
그리고 그 등불은 어둠을 밝히며,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물 위의 파문처럼 살아야 한다.
부드럽게, 그러나 책임 있게.
사라지더라도 아름답게.
말의 힘을 안다는 것은,
그 무게를 감당하겠다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침묵보다 무거운 말, 고요함보다 깊은 말.
진실 앞에서 떳떳한 언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사회에 남길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울림이다.
자연은 파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곧 사라지기에 아름답다.
그러나 인간은 파문을 두려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파문은 남기 때문이다.
언어는 기록되며, 기억되며, 계승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