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상처

이 얀 2025. 4. 29. 01:41

햇살도, 늘 온기만을 품진 않는다.
그 빛조차 한쪽 어깨에 그림자를 얹고 산다.
무심히 흔들리는 초록의 잎맥에도
어느 날은 바람의 손톱에 찢기고,
그 흉터를 감춘 채
이슬 속에서 조용히 우는 법을 배운다.
가장 눈부신 꽃잎도
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우리 또한 그런 존재다.
누구도 들여다보지 못한 균열을
하루치 웃음 속에 꾹 눌러 담고,
마치 아무 일 없다는 듯
흔들리는 마음을 숨긴 채
투명한 단단함을 가장하며 걸어가는,
유리처럼 반짝이는 연약한 존재들.

눈동자 속에 숨겨둔 상처는
밤마다 살얼음처럼 번진다.
그것은 결코 부끄러움이 아니다.
사랑을 깊이 품었던 자만이 지닐 수 있는,
시간이 남긴 기억의 잔향이다.
산다는 것은,
그 부서진 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모아
하나의 창을 만들고,
그 틈새로 다시 햇살을 들이는 일.

삶에 다치고,
미소로 감춘 자존의 갈라짐,
고요한 눈빛 아래 서늘하게 무너진 어제를
우리는 묵묵히 견디는 중이다.
말보다 뜨거운 것이 있다면
그건, 망설임 끝에 내민 체온.
그 체온 하나가,
한 사람의 추위를 말없이 덮어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이라는 존재에 닿는다.

완벽한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그것은
어설픈 대사와 미소로 채워진 연극일 뿐.
서툰 위로라도 좋다.
그 한마디가 누군가의 춥고 캄캄한 밤을
조금 덜 춥게 밝혀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완벽은 언제나 가장 완고한 거짓이다.
정갈한 서재보다 흩어진 책장이,
무늬 없는 접시보다 흠집이 있는 찻잔이
더 진실한 이야기를 품는다.
흠결이야말로 우리가 살아냈다는 증거이자,
세상에 자신을 내보인 용기의 흔적이다.
균열은 흠이 아니라 시간이 스쳐 간 자리다.

우리의 상처가 마주할 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일지도 모른다.
서로의 아픔이 자양분이 되어 피어나는,
하나의 정원처럼.
비에 젖은 흙에서
더 진하게 피어나는 꽃이 있듯,
고통은 때로 생명을 밀어 올린다.

우리는 각자의 흉터로 서로를 껴안는다.
덜 아픈 사람이 더 아픈 이의 그림자를
말없이, 조용히 품어 안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세계가 아직 따뜻하다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사는 이유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