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말이라는 건,
때로는 너무 많아서 가슴이 메고
때로는 너무 적어서 마음이 저민다.
나는 그 사이 어딘가,
말의 틈새에 서서
그저 “그냥”이라고 말했다.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젖은 창유리는 세상의 윤곽을 지우고,
사람들은 저마다 제 속도만큼
어딘가를 향해 바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모든 움직임의 물결 속에서
나는 조용히, 아주 조용히 멈춰 있었다.
누군가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나는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그냥…”
그러나 사실은, 할 말이 너무 많아서
무엇 하나 꺼낼 수 없었던 거였다.
“그냥”
그 한 단어 속엔
보고 싶다는 말,
울고 싶다는 말,
붙잡고 싶다는 말,
말이 되지 못한 마음들로 겹겹이 접혀 있었다.
그리움은 이름을 잃고
그냥이 되었고,
외로움은 목울대를 지나
울음조차 삼키며 그냥이 되었다.
쓸쓸함은 창밖에 남겨진 그림자처럼
말없이, 다만 그냥이 되었다.
“그냥”은 때로 이미 끝난 사랑이었다.
하지만 끝났다고 믿고 싶지 않았던
그날의 잔향이었다.
그건 도망이 아니라 머무름이었다.
깊은 말이 소리 없이 가라앉은 자리,
말의 뿌리가 침묵으로 숨을 쉬는 곳.
사람들은 종종 “그냥”을
가볍고 무심한 대답이라 여긴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건 기억의 무늬가 고요히 살아 숨 쉬는,
감정의 마지막 피난처라는 걸.
마음이 문장 대신 숨을 고르는 방식.
그러니 누군가
“그냥”이라고 말할 때는
그 말의 뒤편을 조용히 들여다봐야 한다.
그곳엔 아직 떠나지 못한 계절이 있고,
불 꺼진 창 아래 웅크린 마음이 있으며,
기다림의 냄새가 스며 있다.
“그냥, 진짜 그냥이었을까?”
아니다.
그건 울고 싶다는 말이었다.
보고 싶다는 말이었다.
내 안에 네가 아직 살아 있다는,
끝내 꺼내지 못한 고백이었다.
그 모든 것이 결국, 사랑이었다는 것을
아무도 아직 모르기 때문에.
아무 뜻도 없는 말인 척,
모든 뜻을 삼켜 버리는
그 말의 무게.
"그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