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이별
한때 세상을 물들이던 꽃들이
하나둘 스러져 간다.
매화는 봄을 가장 먼저 열고, 가장 먼저 진다.
바람이 한 번 스쳐 지나가면
나뭇가지마다 흔적이 지워지고,
다만 잔향만이 남아
봄이 머물렀다 간 자리를 알린다.
마치 먼저 떠난 이의 체온이
아직 공기 속에 남아 있는 듯,
그 향기가 길게 이어진다.
누군가는 이 모습을 보고
아름답다고 말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덧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별이란 언제나 그렇다.
가장 찬란한 순간에 찾아와,
무엇도 준비할 틈 없이 스러지는 것.
목련의 낙화는 처연하다.
두터운 꽃잎이 하나둘 땅으로 떨어질 때마다,
마치 조용한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흰 치맛자락 같은 꽃잎들이 겹겹이 쌓이며,
화려했던 시간을 애도한다.
사랑도 그러하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으나,
결국엔 시들고 만다.
목련이 진 자리에는 갈색 흔적이 남고,
사랑이 스러진 자리에는 상처가 남는다.
너무도 순수했기에 더욱 애달픈 이별.
사랑했던 마음이 깊을수록,
그 끝은 한층 더 처연한 것일까.
동백은 사랑을 끝까지 품은 채 떨어진다.
피보다 붉은 꽃잎은 시들지 않고,
생생한 모습 그대로 툭, 땅으로 내려앉는다.
그 붉음은 너무도 선명하여,
마치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을 놓지 않겠다는 절절한 마음 같다.
그러나 이미 상대는 등을 돌린 뒤다.
사랑은 한순간 무너지고, 미련은 그대로 남는다.
시들지 않은 사랑이 단숨에 끊어지는 고통.
끝내 변하지 않는 마음이기에
더욱 잔인한 이별이다.
서로를 향하던 눈빛이 사라지고,
깊이 새긴 약속이
허공에 부서지는 순간이 떠오른다.
앵두꽃의 이별은 단호하다.
순백의 꽃송이가 가지마다 가득 피어나지만,
때가 되면 머뭇거림 없이 후드득 떨어진다.
마치 이별을 예감한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사라진다.
사랑이 끝났음을 깨닫는 순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야 한다고.
벚꽃에 눈이 팔린 사이,
앵두꽃은 이미 이별을 끝내고 떠나버린다.
되돌아보지 않는 사랑, 망설이지 않는 이별.
그러나 그 끝엔 열매가 맺힌다.
앵두꽃은 떠난 자리에도 무언가를 남긴다.
때로는 사랑보다, 그리움보다
더 단단한 무언가를.
그리고 벚꽃.
벚꽃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나고,
가장 황홀하게 진다.
한꺼번에 만개하여
봄 하늘을 연분홍으로 물들이고,
지는 순간조차 눈부시다.
꽃잎은 한 장 한 장이 아닌,
바람에 휩쓸려 흩날리는 무수한 물결이 된다.
사랑이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가슴에 남아
흩날리는 추억처럼.
이별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을까.
벚꽃이 지는 길 위에 서면,
그리움도 함께 흩어진다.
연한 꽃잎이 바람을 타고 떠오를 때마다,
지나간 시간들이 눈앞에 겹쳐진다.
서로를 바라보던 눈빛, 떨리는 손끝,
미소 속에 담긴 수많은 말들.
결국에는 붙잡을 수 없는 것들이지만,
그래도 아름답게 남아 있는 기억들.
그 낙화의 방식은 유난히도 아득하다.
하늘을 가득 채우던 꽃잎들이
한순간에 바람에 실려 흩어진다.
하나하나의 꽃잎이 이별의 순간을 빛내며
떨어지는 모습이,
어쩌면 사랑의
마지막 장면이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서로를 온전히 사랑했으므로,
떠나는 순간까지도 아름다울 수 있도록.
꽃비가 내린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손끝에 닿는 한 장의 꽃잎.
그렇게 봄날의 끝자락에서,
눈송이처럼 흩날리는 연분홍 꽃잎들.
공중에서 한 번, 두 번 가볍게 흔들리다
이내 바닥으로 내려앉는다.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예정된
이별을 향해 나아가는 듯,
미련 없이 잎자루를 놓아버린다.
벚꽃은 그렇게 흩날리고,
이별은 그렇게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