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꽃을 심는 시인

이 얀 2025. 4. 7. 00:29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
나는 꽃을 심습니다.
사람들이 무심히 스쳐 가는
버스 정류장 옆,
기약 없는 발자국들 사이
무지갯빛 작은 꽃 하나를 심고,
그 꽃에 ‘기다림’이라 이름 붙입니다.

기다림이 피어나는 어느 날,
누군가는 고단한 하루를 내려놓고
잠시 그 앞에 멈춰
숨을 고르겠지요.

꽃이 피면
지나는 사람마다
자기 마음의 이름으로
그 꽃을 부를 겁니다.
‘희망’이라거나, ‘괜찮아’하거나,
혹은 잊고 지낸
그리운 이름을 불러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하루에 하나씩,
이름을 얻게 된 꽃들이 늘어나면
세상은 조금씩 따뜻해질 것입니다.
말보다 눈빛이 먼저 웃고,
존중이 인사처럼 피어나는 길,
마당에 널린 빨래처럼
희망이 햇살 아래 펄럭이는 그런 세상
나는 그 세상을 꿈꿉니다.

나는 믿습니다.
작은 꽃 하나가
사람의 마음에
시처럼 번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시를 따라 아이들이 웃고,
어른들이 어깨를 다독이며
서로의 이름을
조금 더 다정히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꽃은 말이 없지만,
그 색으로 상처를 치유하고
그 향으로 슬픔을 씻어냅니다.
나는 그런 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어디서든 피어나
그 자리만큼을 환히 밝히는 존재.

아이들이 웃으며 꽃의 이름을 부르면,
그건 단어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입니다.
‘사랑’, ‘용기’, ‘참을성’, ‘다정’ 같은 것들이
흙 위에서 피어날 수 있음을
믿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오늘도 나는
사람의 마음을 꽃처럼 읽고,
꽃의 말 없는 시를 대신 써 내려가는
조용한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꿈꿉니다.
서로의 마음에 조심스레 온기를 불어넣고,
다른 이의 이름을 조용히 불러주는
그런 세상을.

그 세상에선,
누구도 꺾이지 않고
모두가 제 이름의 꽃으로 피어날 것입니다.
나는 그날까지
말없이 흙을 고르고,
씨앗을 품으며
봄보다 먼저 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