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자리에서
살아온 날만큼 경험이 쌓여
들려주고 싶은 말은 많아지지만,
정작 젊은이들과 스치는 자리마다
조심스러워 그 말은 흩어지고 만다.
젊은이들을 향해 조심하라, 그 길은 위험하다,
이렇게 하면 더 좋지 않겠느냐 하고
말을 보태려다가도
문득, 저들이 내 말을 듣고 싶어 할까 싶어
입을 다물게 된다.
젊은 날의 나를 떠올리면,
내게도 누군가 이런 조언을 건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지금 내가 들려주는 말도
그래서 바람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날, 분재를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다.
이 작은 나무도 처음엔 제멋대로 자라려고 했다.
가지를 뻗는 방향이 마음에 들지 않아
가위를 들고 다듬고,
철사로 휘어 원하는 모양을 만들려 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손을 대면 나무는 상처를 입고,
되레 힘없이 꺾이기 마련이었다.
결국, 시간이 흘러 스스로 자리 잡고 나서야
비로소 아름다운 형태를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꼭 하고 싶어진다.
젊은 날의 실수는 피할 수 없다고,
그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배움이라고.
하지만 그런 말조차도 때로는 반발을 불러온다.
실수도 직접 겪어 보아야 깨닫는 법인데,
그들이 가는 길이 삐뚤어 보이고,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못마땅해도,
가만히 기다려 줄 필요가 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돌이
제 몸을 부딪치며 광택을 얻듯,
삶의 모난 부분은 직접 부대끼며
단단해지는 법이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돌아가더라도,
그것이 결국은
온전한 자기 자신을 만드는 과정 아닐까.
언젠가 한 젊은이에게 충고를 건넨 적이 있다.
나는 나름 부드럽게 말한다고 했지만,
그의 얼굴은 단단히 닫혀 있었다.
듣고 싶지 않다는 표정. 그 순간 알았다.
내가 젊었을 때 어른들의 말이
마치 먼지처럼 느껴졌던 이유를.
듣는 이를 위한 말이 아니라,
말하는 이를 위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조언을 건넨다는 명목으로,
나는 자신을 스스로
확인받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내 경험이 여전히 가치 있다고,
내 지혜가 무시당하지 않는다고.
잦은 조언은 때때로 족쇄가 된다.
나는 좋은 길을 보여 주려 했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구속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나를 어른으로서 존경하기보다는,
어른이라서 어쩔 수 없이 듣고 있는 듯한
표정이 익숙해졌다.
‘이렇게 하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실패해.’ 하며
길을 막는 대신, ‘어떤 길을 선택해도 괜찮다.’
‘너는 너의 방식대로 살아라.’라고
말해 주는 것이 어른의 몫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 지갑은 열고 입은 닫으라 했다.
그러나 나는 입을 닫는 대신,
바람의 자리에 서기로 했다.
바람은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스쳐 지나가고,
부드럽게 흔들어 놓을 뿐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면,
바람이 지나간 자리에서 무언가가 싹튼다.
젊은 날 내게도 그런 바람이 있었다.
아무도 나를 억지로 가르치려 하지 않았지만,
나는 어느 순간 깨닫게 되었다.
실수 속에서, 넘어짐 속에서,
묵묵히 곁을 지켜준 사람들의 온기 속에서.
이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를 향해 손가락을 들어 보이기보다,
그저 바람처럼 지나가는 사람.
때가 되면 저들 스스로 깨닫고
자라날 것을 믿으며,
내 자리에서 한 그루의 나무처럼 서 있는 사람.
봄에는 잎을 틔우고, 여름에는 그늘을 만들며,
가을에는 열매를 내어주고,
겨울에는 조용히 침묵하는 그런 사람.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뿌리를 깊이 내리는 나무처럼,
나는 이제 말보다
묵묵한 기다림을 배우려 한다.
젊은 날의 나는 시행착오 속에서 성장했다.
그러니 그들도 넘어지며
배울 권리를 가질 것이다.
다만, 그들이 너무 멀리 떠내려가지 않도록
저 멀리 등불 하나 밝혀 두는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게, 나이 든 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사랑인지도 모른다.
젊은 날의 나는 바람을 맞고 자랐고,
지금의 나는 바람이 되어 흐른다.
부드럽게 스치고, 조용히 머물다 간다.
그렇게 바람의 자리에서,
나는 내 삶을 완성해 간다.



